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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의 전설 굽이굽이 내려오는 김해 산

[경남의 산] (6) 김해…임금 상징하는 용·호랑이·거북 닮아 신성하게 여겨온 김해의 산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7년 03월 03일 금요일

김해를 둘러싼 산은 대체로 용, 호랑이, 거북을 닮았다. 구지봉을 포함해 임호산, 용지봉, 석룡산, 반룡산 등이 그렇다. 풍수에서는 이 세 짐승 모두 임금을 상징하는 기운을 담고 있다고 본다. 산세만으로도 김해는 큰 임금이 날 땅인 셈이다. 첫 큰 임금이 바로 가락(가야)국의 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씨의 시조이기도 한 김수로왕이다. 김해 산 이야기는 지리산에서 시작한 낙남정맥의 끝, 분성산에서 시작한다.

▶옛 지도로 본 김해

조선시대 지도를 살펴보면 김해 고을의 진산(鎭山·고을을 수호하는 주산)은 분성산(盆城山·327m)이다. 당시에는 분산(盆山) 혹은 산성봉(山城峰)으로 기록됐다. 분산에서 줄기가 뻗어 구지봉(龜旨峰·200m)을 이뤘다. 대부분 조선시대 지도에 구지봉 자락에 있는 허후릉(許后陵·수로왕비릉)과 이곳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수로왕릉을 명확하게 표시하고 있다. 고을의 중심이 되는 읍치(邑治)는 수로왕릉, 구지봉, 분성산 줄기로 둘러싸인 곳에 있다. 당시 지도에는 분성산에서 두 줄기 하천이 흘러나와 바다로 향한다. 읍치를 동쪽으로 끼고 흐르는 것은 지금의 해반천이다. 또 하나, 읍치를 가로지르는 하천은 현대에 들어 복개되어 이제는 볼 수가 없다.

고을 서쪽 아래 류민산(流民山)이 표시된 지도가 많은데, 오늘날 임호산(179m)을 말한다. 고을 성곽 동남쪽 아래로 내삼태(內三台), 외삼태(外三台)로 표시된 조그만 봉우리 6개가 보이는데, 오늘날 어느 것을 가리키는지 알기 어렵다. 분성산을 포함한 고을 전체 지역을 신어산(神魚山)과 식산(食山) 줄기가 감싸고 있다. 식산은 지금의 무척산이다.

▶분산성이 있는 김해 진산, 분성산

분성산 혹은 분산의 '분(盆)' 자는 '바리'라는 우리말을 발음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본다. 그래서 분산은 '서쪽에 있는 산'이란 뜻이다.

분성산이라는 이름으로 보면 분명히 분성(盆城)이 있어야 하는데, 분산성(盆山城)이 있다. 돌로 쌓은 분산성이 아닌 흙으로 쌓은 분성이 따로 있지 않았나 생각하는 연구자도 있다. 이 두 성을 혼동해 후세 사람들이 분산을 분성산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실제 고산자 김정호가 쓴 조선 지리서 <대동지지>(1864)에는 석성(石城)인 분산성과 토성(土城)인 분성을 따로 적어 놓았다. 토성을 쌓은 건 수로왕이라고 한다. 분산성은 따로 김해산성이라고도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분산 위에 토성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어 혼란스럽다.

▲ 김해 분성산 분산성에서 바라본 김해 시가지 전경. 분성산에서 구지봉으로 이어져 내려간 산세를 중심으로 고대 금관가야의 찬란한 문화가 꽃피었다. 20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이곳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터전을 이루고 살고 있다. /유은상 기자

어쨌거나 분산성이라는 석성이 조선시대에도 분성산 위에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1872년 지방지도>에는 '분성산성지도'가 있어 당시 성이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지도를 보면 성곽 내부에는 우물과 연못, 창고 등이 갖춰져 있어 명실 공히 군사기지 노릇을 제대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주의 중심, 신령한 거북, 구지봉

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난 구지봉(龜旨峰). 조선시대에는 구지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대부분 거북을 닮아서 거북 구(龜) 자를 쓰는 것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글자를 더 분석해보면 이곳이 수로왕이 태어날 당시 사람들이 신성시했던 땅 자체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구(龜)는 지모신(地母神)을 상징하는 옛 우리말 발음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지모신은 대지 곧 모든 생명을 잉태하는 땅을 어머니로 여기고 숭상하는 것을 말한다. 구지의 지(旨)는 중심을 뜻하는 옛 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하여 어머니 대지신의 중심지란 뜻으로 구지(龜旨)라고 적은 것이다.

구지봉이 거북 모양에서 나온 말이란 것은 <삼국유사>에 처음 나온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형세론적인 분석이다. 산의 생김새를 보고 길흉화복을 판다는 것이다. 거북은 용, 봉황, 기린과 더불어 예로부터 신령한 동물로 여기고 있다. 대체로 수로왕비릉이 있는 곳이 거북 몸통으로, 구지봉을 거북 머리로 본다. 김해 주산인 분성산에서 뻗어나온 정기가 거북 머리가 있는 구지봉에 맺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구지봉을 지나 마산으로 가는 도로공사를 하면서 몸통과 머리가 연결된 목 부분을 잘라 버렸다. 이후 1980년대 말 거북의 목을 연결하자는 김해 김씨 문중의 건의를 받아들여 김해시는 1992년 도로 위에 터널을 만들고 흙을 5m 정도 덮어 수로왕비릉에서 구지봉으로 오가는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차들이 거북이 목으로 지나다닌다.

도로를 내면서 잘렸던 거북의 목 부분과 몸통 산세를 이으려 만든 구지봉 터널.

▶입 막아 길들인 호랑이, 임호산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을 오가는 길에 보이는 임호산(林虎山). 이름 그대로 호랑이를 닮은 산이다. 조선시대에는 가조산(加助山) 혹은 부민산(富民山)으로 불렸다. 당시 민간에서는 류민산(流民山)으로 부르기도 했다는 기록이 많다. 많은 조선시대 지도가 류민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가락국 9대 겸지왕 시절 류민공주(流民公主)와 관련한 슬픈 사랑 이야기가 서린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이 산 모양새가 옛날부터 편안하지 못했나 보다. 마치 호랑이가 고을 쪽을 돌아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위협하는 듯해 악산(惡山)이라거나 호랑이 호(虎)를 붙여 호구산(虎邱山), 임호산으로도 많이 불렸다. 이 중 가장 많이 불린 이름이 임호산이다.

가락국 장유화상(화상은 승려라는 뜻)이 호랑이의 벌린 입 부분에 절을 세워 그 기운을 눌렀다고 한다. 현재 임호산 중턱에 있는 흥부암이다. 지금도 흥부암 대웅전 주춧돌을 받친 게 호랑이 석상이다. 그만큼 철저하게 거친 기운을 잠재우려 애쓴 것이다. 장유화상은 흥부암을 짓고는 당시 산 이름을 안민산(安民山)으로 고쳤다고 한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산이란 뜻이다. 흥부암이란 이름도 독특하다. 호랑이 입을 막고서는 흥부암(興府庵)이라고 했다. 김해부(府)를 흥하게 할 암자라는 뜻이다. 김해 사람들은 이렇게 오래전부터 큰 호랑이를 길들여 마을을 지키게 했던 것이다.

호랑이를 길들이려 세웠다는 흥부암의 대웅전 주춧돌. 호랑이 모양이다.

▶신성한 두 마리 물고기, 신어산

신어산(神魚山·630m)은 분성산 너머에서 신(神)처럼 우뚝하니 솟아 김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신어(神魚)는 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의 출신국 아유타국의 상징이다. 수로왕릉 정문을 포함해 은하사, 합천 영암사, 요즘에는 김해 시내 곳곳에서도 볼 수 있는 물고기 두 마리, 즉 쌍어(雙魚)를 말한다. 쌍어는 가락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 신라 왕족의 허리띠에도 물고기 장식이 있다.

페르시아 신화에서 신어는 카라(Kara)라고 불린다. 이 말에서 가야, 가락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신어는 페르시아인들이 숭배하던 큰 나무 '고 케레나'를 수호하는 일을 한다. 이 나무는 인간의 병을 고치거나 새로운 생명을 준다고 한다. 신어가 있는 곳이 곧 인간을 보호하는 신령스러운 장소다. 그래서 신어산은 옛 김해, 즉 가락국 사람들이 신성시하던 산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불교에서도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고 항상 깨어 있기에 수행자의 상징 혹은 부처를 수호하는 신물로 여겨진다. 2000년 전 저 멀리 페르시아에서 헤엄쳐 온 신어가 지금까지 김해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해의 지명>(민긍기, 김해문화원, 2005)

<김해의 지명전설>(이홍숙, 김해문화원, 2008)

<산천독법>(최원석, 한길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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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