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궁극의 문구>다카바타케 마사유키 지음
저자, 일본 '문구왕'대회 우승자
애장품 손수 그린 사용 설명서
제품 용도·가격 외 추억도 담아

학창 시절 '지우개'는 크게 두 가지 용도로 사용한다. '놀이용'과 '학용품'. 놀이용 지우개는 크고 단단하다. 상대방 지우개를 압도할 정도로 무겁고 쉽게 부러지지 않아야 한다.

놀이용 지우개는 학용품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고사리손으로 쥐기에는 너무 컸다. 깨끗하게 지워지지도 않았다. 1초가 아쉬운 순간에 얇은 '갱지(시쳇말로 똥 종이)' 시험지를 찢어먹는 얄미운 존재였다. '코끼리 지우개' 등으로 불린 놀이용 지우개는 결국 문구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짧고 굵은 생명력이었다.

잠자리가 그려진 학용품 지우개는 놀이용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넘기려다 부러지기 일쑤다. 대신 학용품 역할은 제대로 해낸다. 꾹꾹 찍기만 해도 곧잘 지워낸다. 학용품 지우개는 사무용이나 다른 용도로 변신할 수 있었다. 잠자리 지우개는 지금도 팔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2014년 즈음 문구 붐이 불었나 보다. 문구 관련 책이 많이 나왔단다. <궁극의 문구> 저자 다카바타케 마사유키는 문구 팬이다. 이런 현상을 접하고 심정이 복잡했단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 책에서 소개한 문구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문구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 듯하다. 물론 수입 만년필은 훌륭하다. 문호의 서재나 대기업 임원이 쓰는 책상에는 그런 문구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문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왠지 핸들이 반대편에 달린 외제차를 무리해서 모는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 같다."(6쪽)

책은 도록에 가깝다. 저자는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평범한 문구를 소개한다. 그렇다고 아무 문구나 선택하지 않는다.

저자는 1999년 TV도쿄 '제2회 전국 문구왕 선수권'에서 우승한 전적이 있다. 문구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개인 문구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문구 전문가 감각과 지식으로 꼼꼼하게 골랐다.

자신이 쓰는 문구 중 필수인 제품을 중심으로 거의 매일 사용하는 실용적 문구에 초점을 맞췄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됐다. '쓰다', '지우다', '자르다', '붙이다' 등 목적으로 세분화했다. 심지어 핀셋, 골무, 먼지 제거 시트도 등장한다.

저자는 실용성, 가성비 등 종합적인 안목으로 문구를 선택한다. 그가 '문구 역사에 남을 가위'라 평한 '플러스 피트커트 커브'는 저렴하고 디자인도 훌륭하다. 일반적인 가위는 날이 직선을 이룬다. 날을 닫을수록 V자 형 각도가 좁아진다. 단단한 물건을 자르기 어렵다.

저자 페이스북 사진자료.

저자가 선택한 가위는 안쪽부터 끝까지 날 전체에서 중간쯤 각도가 되도록 설계한 제품이다.

저자는 "절삭력만 따지면 더 좋은 비싼 가위가 많지만, 가정에서 평범하게 쓰는 가위로 합리적인 가격대에 새로운 단면을 도입한 피트커트 커브 등장은 분명히 문구사에 길이 남을 한 장면"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인이 썼지만 한국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도 많다. 예를 들면, '잠자리 지우개'다. 저자는 '톰보 모노 지우개'를 궁극의 문구로 꼽았다. 용도부터 크기, 무게, 가격까지 꼼꼼하게 정리했다.

저자는 제품 소개로 끝내지 않는다. 지우개 소재는 고무가 아니라 플라스틱 염화비닐이다. 염소를 포함해 태울 때 맹독 성분인 다이옥신이 나온다. 대신 저렴한 단가와 간단한 성질 조정 등을 이유로 문화생활 전반을 지탱한 소재라는 장점도 있다.

현재 대체 소재와 기술이 마땅치 않은 상황. 저자는 "악당을 심판대에 올려 처단하기 전에 조금 더 넓은 안목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중략) 환경은 우리의 미래다. 다만 이 지우개가 수많은 창작을 돕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사소한 물건이라고 그냥 사라지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문구 하나로 함께 고민할 과제를 던지는 셈이다.

중간마다 등장하는 칼럼도 재밌다. 가위 고르는 방법은 문구를 선택할 때 참고용으로, 붙임쪽지로 실내용 글라이더를 만드는 법은 심심할 때 따라해 보면 좋겠다.

135쪽, 푸른숲,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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