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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사람]배우지 못한 한 이제라도 풀어야제

일흔 넘어 한글 공부하는 강병순 할머니
어릴 때 노는게 좋아 학교 안가
빠듯한 살림에 배움 기회 놓쳐 글 읽고 쓸 수 없어
2016년부터 성인문해교육 받아 "초등학교 졸업장 받는 게 소원"

류민기 기자 fbalsrldi@idomin.com 2017년 03월 03일 금요일

처음 만난 순간 강병순(75·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할머니는 소녀처럼 해맑게 웃으셨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가 부끄럽다고 말하면서도 지나온 세월을 하나하나 들려주셨다. 일흔이 넘어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졸업장을 가지는 게 소원이라는 할머니. 지난 세월, 이 소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배우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 될지 몰랐다"

"6·25 전쟁이 끝나고 나서였지. 오빠랑 같이 국민학교 들어가서 공부하게 됐는데,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오빠가 학교에 오지 못하도록 하는 기라. 그래 울며 집에 와 '나 학교 안 갈란다. 못 가겠다' 하니 집에서도 가지 말라고 하데. 당시만 해도 공부보다 노는 게 좋아서 학교 안 갔지. 어린 마음에 뛰어다니고 노는 게 좋았다."

그땐 그랬다. 아들은 몰라도 딸은 공부시키지 않아도 됐다. 자기처럼 학교 안 가는 친구들과 놀면 그만이었다. 농사짓는 아빠, 엄마 따라 들에 나가 구경도 하고 일도 도와주고 하는 게 재밌었다. 가슴 한구석,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데 대한 응어리가 있지만 상관없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 글자라도 더 공부한다는 강병순 할머니.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커진 건 결혼 후 쌀 장사를 하면서부터다.

"내가 좀 배워야 남한테 말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 것이라. 내 이름 쓸 줄 알고 숫자도 알았지만 조금만 아는 상태라 더 답답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 앞에서 글 쓸 일 있으면 손이 떨리고, 실수는 안 하는가 당황이 되고 그랬지."

열아홉에 결혼했다는 할머니. 아이들 키우랴, 살림살이하랴, 거기에 장사까지 하느라 정신없었을 삶을 당신은 "고생 많이 했다"는 말과 함께 한숨으로 대신했다. 그래서일까. 이어진 할머니의 "배우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 될지 몰랐다"는 얘기가 더욱 안타깝게 들렸다.

◇칠순 넘어 찾아온 '배움의 기회'

지난 2015년 12월이었다. 경로당에 창원 완월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오셨다. 글 모르는 어르신들 가르쳐주고, 3년간 교육받으면 초등학교 졸업장도 준다고 했다. 경남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육이었다. 드디어 강 할머니에게 '배울 기회'가 온 것이다. 할머니는 자음·모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도 되나 안 되나 쑥스럽기도 하고 그랬는데 '내한테 도움을 주는데 왜 부끄러워해. 가서 배워야지' 하고 마음먹었지. 그래 와서 공부하니 선생님도 좋고 하나하나 배우니 재미가 났다."

지난해 교육을 시작할 때 여기저기서 모인 노인이 35명. 시간이 지나며 몸이 아프거나 해서 못 오는 사람은 있어도 배우기 싫어서 안 오는 사람은 없었다.

"배워야 한다는 욕심에 다 오는 기라. 또 하나라도 더 배워 서로 앞지르려고 하니까 재미있지. 저 사람 잘하면 내가 더 잘하려고 하고, 시험친다고 하면 100점 받으려고 더 공부하고. 할매들이 욕심이 많다."(웃음)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 그래서 한이 맺혔다는 사람들이 모인 교실. 그렇다고 분위기가 살벌할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먹을 거 가져와서 나눠 먹고, 봄·가을에는 손잡고 소풍도 가고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오전 9시 20분부터 1시간 30분간 함께 공부하며 우애를 다지니 어느새 가족 같은 존재가 됐다.

강 할머니가 지은 시.

동네 노인정을 이끌고 있다는 강 할머니는 글 쓰는 것도 그렇고 계산하는 것도 그렇고 그간 배운 게 생활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며 웃었다. 물론 젊은 사람들처럼 배운 걸 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게 힘들다. "들으면 까먹고 들으면 까먹고 하니까 그게 힘들다. 집에 갈 때는 생각나는데 집에 와서는 생각이 안 나는 기라. 헷갈린다 싶을 땐 무조건 책 본다. 단어 하나 배우는 것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매일 새벽(오전 1~2시) 일어나 공부한다는 할머니는 3일(오늘)부터 초등학교 3~4학년 교육을 받는다. 목표는 단 하나, '졸업장'이다. "내 소원이 뭐꼬 하면 졸업장 하나 받아보는 기다. 선생님 가르쳐주는 대로 열심히 따라하며 공부해서 초등학교는 무조건 졸업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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