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때문에 사라지는 일자리 위해
유럽의회 전자인간 지정 과세 가능

연말 연초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세금에 대한 관심이 높다. 바로 연말정산 때문이다. 필자도 한 푼이라도 세금 공제를 더 받으려고 꼼꼼히 자료를 입력했지만, 추가 징수라는 연말정산서를 받고는 허탈한 기분이다. 소득은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지만, 사회 구성원과 더불어 살기 위해 납세라는 사회적 제도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최근 또 다른 세금이 급부상하고 있다. 아직은 많이 생소한 '로봇세'이다. 로봇세는 로봇을 소유한 사람·기업 혹은 로봇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다. 로봇세를 실제로 도입한 사례는 없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 게이츠는 로봇세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대통령 선거의 사회당 후보인 브누아 아몽 역시 로봇세 징수를 공약으로 내걸 정도로 로봇세는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로봇세에 대한 논의는 로봇에 의해서 사라지는 일자리 때문에 시작되었다. 이미 제조 공장에서 로봇 자동화에 의해 노동자 대체가 만연해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을 갖춘 더욱 똑똑해진 로봇이 오는 2020년까지 세계적으로 5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없애거나, 인간 일자리의 45%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각종 미래보고서도 발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게 될 로봇의 노동에도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로봇의 사용은 노동자들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반면에, 로봇을 고용한 자본가는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이처럼 로봇을 고용한 자본가들로부터 줄어든 일자리만큼 세금을 걷어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다. 걷은 로봇세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의 재교육과 취약계층의 기본소득 보장에 활용될 수 있다.

세무학자의 말에 따르면 로봇세는 소비세·재산세·소득세로 나눌 수 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커피·음료 등의 자동판매기(자판기)에는 부가가치세법에 따라 세금이 매겨지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로봇소비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부동산이나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징수하듯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로봇을 소유한 사용자에게도 로봇재산세를 부과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소득세를 징수하려면 납세자가 인격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법체계 상 인격은 인간과 법인(인간의 공동체)에만 주어지기 때문에 로봇은 납세자가 될 수 없다. 그런데 2017년 1월에 유럽의회는 인공지능 로봇의 법적 지위를 전자인간(Electronic personhood)으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로봇에게 직접적으로 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소득세 징수는 로봇이 연말정산을 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아직은 실현 가능성이 적은 먼 이야기이지만, 날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혁신 속도를 고려할 때 로봇의 연말정산이 공상에 지나는 헛소리는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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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로봇세 도입을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로봇세 반대론자는 로봇세는 로봇기술과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며, 로봇 때문에 생겨날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을 더디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동화는 인간의 일자리를 파괴하기보다는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 한다. 직물노동자의 98%가 기계로 대체되었지만 오늘날 패션·의류 등 섬유산업 종사자가 더 증가하였고, 현금자동인출기(ATM)가 늘었지만 은행 종사자도 함께 증가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여하튼,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적대적 로봇이 아니라, 인간과 공존하는 호혜적 로봇으로서 로봇세 논의는 전 지구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로봇의 기술혁신을 가로막지 않고,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인간의 지혜로운 제도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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