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온다?

이번 겨울은 큰 추위가 거의 없었다. 매서운 추위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예년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잔뜩 움츠려 있었는데 다행히 주말에 날이 풀렸다.

전날 일기예보를 보니 2월 초인데도 한낮에는 영상 10도 가까이 기온이 오를 것이라 했다. 하지만 밤에는 전국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일단 지인에게 연락해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기로 약속을 했다.

아침 9시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려면 7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아침을 먹고, 씻고, 추위를 이겨낼 방한자켓과 팬츠까지 갖춰 입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영하의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날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면 사람들에게서 "이 추운 날 도대체 저 짓을 왜 하나? 저 양반들은 춥지도 않나?"하는 시선을 느낀다. 그렇다. 사실 춥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다 그냥 길가에 버리고 차를 얻어타고 집에 가고 싶을 만큼 추울 때도 있다. 그래도 타고 싶은 걸 어쩌란 말인가? 좀이 쑤셔서 견딜 수 없는 걸 어쩌란 말인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가 안 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아무리 추워도 타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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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군 삼동면 죽방로에 있는 방파제에서 두 모터사이클 라이더가 지족해협을 바라보며 여행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터사이클은 왼쪽이 혼다 ST1300, 오른쪽이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드다. /조재영 기자

 

그러면 그들은 추위를 느끼지 않는 '터미네이터'들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춥지만 최대한 추위를 이길 방법을 찾아 활용한다.

우선은 찬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많이 껴입는다. 양말도 두 겹으로 신고, 장갑도 두툼한 것을 낀다. 하지만 너무 많이 껴입으면 둔해져서 운전에 방해가 된다. 대안으로 나온 것이 열선 자켓과 열선 팬츠다. 전기를 연결하면 전기장판처럼 옷 속이 따뜻해진다. 열선 장갑도 있고 열선 신발 깔창도 있다. 이런 제품을 모두 갖추면 영하의 추위가 전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이런 제품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다.

최근에는 핫팩의 활용도가 높다. 2~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핫팩의 성능은 서너 시간 미지근한 온도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오는 핫팩은 놀라울 정도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자켓 안쪽 등에 접착식 핫팩 하나를 붙이고, 가슴 쪽 안주머니에 핫팩 하나를 넣어두면 저녁에 귀가할 때까지 따뜻하다. 따듯한 정도가 아니라 뜨거울 정도다. 그만큼 핫팩 만드는 기술도 진화한 것이다. 신발 안쪽에도 작은 핫팩 하나 넣어 두면 집에 올 때까지 오케이다. 하지만 핫팩으로 해결되지 않는 곳이 있다. 손이다. 정확하게는 손가락이다. 장갑 속에 핫팩을 넣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손등 부분에 핫팩을 넣어도 온기가 손가락까지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타는 BMW R1200RT는 손잡이 부분에 열선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지만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 100km 안팎으로 달리면 큰 효과가 없다. 손바닥만 따듯할 뿐 손가락 끝까지 따듯해지지는 않는다. 결국 손가락 시림은 열선 장갑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

다솔사

약속장소에는 지인 2명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한 명은 후배, 한 명은 선배다.

함안의 한 편의점에서 만나 따끈한 꿀차로 몸을 덮힌 후 출발한다. 보통은 커피를 마시지만 추운 겨울에는 커피 마시기가 두렵다. 커피를 마시면 오래가지 않아 요의를 느끼게 되고, 자켓과 팬츠를 두껍게 입은 상태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은 적잖이 성가신 일이다. 그래서 겨울에는 커피 대신 꿀차나 생강차가 좋다.

함안 가야읍에서 군북면을 지나 진주시 사봉면으로 넘어간다. 진성에서 2번 국도를 타고 경상대학교 뒤를 돌아 사천으로 향한다. 다솔사까지는 천천히 달려도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날씨도 좋고 함께 달리는 사람들 숫자도 딱 좋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투어를 즐길 때는 2~4명이 달릴 때가 가장 홀가분하고 경쾌하다.

동행한 지인 2명은 다솔사가 처음이라고 했지만 나는 여러 번 왔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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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솔사는 녹차로도 유명하다. 대웅전 뒤에 드넓은 차밭이 있다. / 조재영 기자

 

2013년 무렵이었는데, 가을 지나고 겨울 초입이었다. 혼자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를 타고 다솔사까지 왔다. 산사는 고요했다. 바깥 동네는 이미 단풍이 졌지만 산사에는 늦은 단풍이 절정이었다. 그 풍경에 취한 채 절집 안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절 구경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지갑을 챙기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지갑이 없었다. 낭패였다. 점심은 굶으면 된다. 문제는 기름이었다. 연료 잔량을 확인해보니 집에까지 가기가 간당간당한 정도였다.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원래 계획은 다솔사 구경을 하고 나가는 길에 점심을 먹고 산청 함양 지리산을 둘러 집으로 갈 계획이었다. 지리산 가는 계획은 깨끗이 포기했다. 연료도 없고 무일푼으로 무작정 지리산으로 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간에 연료가 떨어질까 조마조마 가슴을 졸이며 집으로 달려야 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예상보다 일찍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아내가 까닭을 물었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바보'라고 놀림을 당했다. "주유소 아무 데나 가서 기름 넣고 전화를 하지. 그럼 입금해줄 텐데…. 바보!"

다솔사는 경남 도내 사찰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라고 한다. 다솔사는 깊은 역사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절이다. 신라 지증왕 4년(503년)에 연기조사가 봉명산 기슭에 창건한 '영악사'였다고 한다. 선덕여왕 5년(636년) 때부터 '다솔사'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완전 소실되었다고 한다. 숙종 6년(1608년)에 복원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고 전한다.

절 앞마당에 주차를 하고 계단을 오르면 대양루를 만난다. 대량루는 우람하면서도 다듬어지지 않은 모양 그대로인 기둥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에서 한 눈에도 오래된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대양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호)는 조선 영조 24년(1748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밖에서 보는 대양루는 그 모양이 웅장하고 듬직하다. 안쪽으로 돌아 들어가 보면 다솔사 홍보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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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해 한용운과 소설가 김동리가 머물렀던 다솔사 요사채 안심료. / 조재영 기자

 

대웅전 격인 적멸보궁이 절 가운데서 중심을 잡고 있으며 적멸보궁 양쪽으로 두어 채 건물이 더 있다. 적멸보궁 뒤로 넓게 차밭이 펼쳐져 있는데 이 찻잎으로 만든 '반야차'가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만해 한용운과 '등신불'로 유명한 김동리 선생이 일제 치하 다솔사의 식구였다. 한용운은 다솔사에 은거하며 불교항일비밀결사조직 만당을 이끌었다. 만당은 승려와 청년불교도들이 일본의 식민불교화에 맞서 우리 불교를 지키고 또 한편으로는 혁신하면서 일본에 대항하고자 만든 비밀조직이었다. 다솔사는 만당의 근거지였다.

김동리는 일제 때 이곳에서 광명학원에는 야학을 세웠다. 우리나라가 독립한 뒤인 1963년에는 이 절에서 단편소설 '등신불'을 썼다. 등신불의 배경이 다솔사인 셈이다.

대양루 옆에 '안심료'라는 별채가 있는데 이 요사채에 한용운과 김동리가 기거했다고 한다.

볕이 잘 드는 안심료 마루에 걸터앉아 본다. 한용운은 사람들 눈을 피해 이곳으로 항일비밀결사조직원들을 불러모았을 것이고, 김동리는 이 방에서 '소신공양'을 소재로 한 등신불을 밤새 썼을 터이다.

다솔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2km 정도 오르면 보안암이 있는데 이 암자에 경주 석굴암을 닮은 고려시대 석굴이 있다고 한다. 다솔사에 여러 번 갔지만 한 번도 보안암까지는 올라보지 못했다.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다음에 올 때는 보안암에도 올라 보리라고 다짐을 하고 돌아섰다.

북천역

다음 목적지는 하동 북천역이다. 다솔사는 사천시 곤명면에 있는데 하동 북천역까지는 금세 도착한다. 우리가 찾아간 북천역은 작년 7월에 문을 연 새 북천역이 아니라 옛 북천역이다. 경전선 복선화가 진행되면서 노선이 직선화되었다. 그 바람에 옛 북천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새 북천역이 생기고 옛 역은 폐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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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코스모스 축제로 유명한 하동 옛 북천역. 리모델링을 위해 마당을 파헤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오른쪽에 있던 오래된 화물취급소 건물 2동은 이미 철거됐다. /조재영 기자

 

우리가 도착했을 때 폐역은 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역 마당에는 굴착기가 콘크리트 포장을 뜯어내고자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까지 멀쩡하게 있던 화물취급소가 온데간데없다. 그새 철거된 모양이다.

모터사이클 3대를 작업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 주차하고 역 건물 옆으로 돌아 플랫폼으로 갔다. 기차가 다니지 않은 탓에 철로가 녹슬었고 철로 곳곳에는 마른 잡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옛 북천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아직 깔끔했다. 또 표지판 옆에는 옛 기관차 모양의 조형물도 그대로 있고 그 조형물에는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연인들의 열쇠도 몇 개 달려 있다. 여기에 자물쇠를 채운 연인들은 곧 몇 개월 뒤 이 역이 제 소임을 다하고 폐역이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었을까? 그걸 알고도 열쇠를 채웠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났다. '영원한 사랑'의 다짐과 '폐역'. 왠지 쓸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연인들은 지금쯤 잘 지내고 있을까? 그새 헤어지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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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경전선 복선 구간이 새로 개통되면서 폐쇄된 뒤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는 옛 북천역./ 조재영 기자

 

플랫폼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자니 누군가 다가와 역에서 나가라고 한다. 공사 관계자였다.

역을 철거하는 공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리모델링한다고 한다. 철로를 걷어내지 않고 레일바이크를 놓아서 관광객을 모을 것이라고 했다. 좋은 생각이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북천코스모스 축제와 연계하면 더 많은 관광객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낡았다고 뜯어내고 없애버릴 것이 아니라 역사성을 살리거나 주변과 적절하게 연계하면 얼마든지 활용방안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는 주는 본보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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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북천역 플랫폼에 설치되어 있는 기관차 모양의 조형물에 관광객들이 채워놓은 소원 열쇠. /조재영 기자

 

남해와 동해

역 앞길 건너편 국밥집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고 나서 어느 쪽으로 갈지 생각하는데 함안에서 출발할 때 배웅해주었던 후배가 자신도 잠시 달릴 수 있는 틈이 났다며 적당한 장소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고성 동해면에 있는 카페 몽뜨레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하동 북천에서 고성으로 곧장 가려면 진주를 거쳐 고성으로 가거나 사천읍에서 33번 국도를 타고 고성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남해를 거쳐 가기로 했다. 북천에서 진교IC를 거쳐 남해읍을 지났다. 내비게이션은 19번 국도를 따라 길을 알려주지만 큰 도로로만 달리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나는 남해읍을 지나 이동면 석평리쯤에서 19번 국도(남해대로)를 버리고 해안도로(죽방로)로 일행을 이끌었다. 구불구불 해안을 따라 달리는 죽방로에는 통행하는 차가 많지 않아 여유롭기도 하고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달리는 길이어서 풍광도 빼어나다. 그래서 자동차 드라이브 코스로도 만점이다.

이 길은 창선교까지 이어진다. 봄바람을 만난 듯 신나게 달리던 우리는 섬북섬 앞 방파제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아무리 길이 좋아도 1시간쯤 달렸으면 쉬어가는 것이 몸에도, 안전에도 좋다. 저녁에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후로 접어들면서 햇볕이 사라지고 하늘에 구름이 깔렸다. 육지에 둘러싸인 남해바다는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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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 동해면 카페 몽뜨레에서 바라보는 당항만과 동진대교의 풍경이 일품이다. /조재영 기자

 

우리는 이제 남해에서 동해(고성군 동해면)로 달렸다. 삼동면에서 삼천포 방면으로 달릴 때 보통 운전자들은 창선교를 건너 지족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창선면 소재지 방향으로 달린다. 당연히 자동차 통행량이 많다. 나는 지족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길 역시 자동차 통행량이 적고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달릴 수 있는 길이다. 왼쪽에는 바다를 끼고, 오른쪽에는 어촌마을을 끼고 달리는 시골길이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통행하는 농기계와 길을 건너는 마을 노인들이다. 속도를 내지 말고 여유롭게 달리는 것이 정답이다. 주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삼천포를 지나고 고성읍을 거쳐 동해면 카페 몽뜨레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가 달려왔다. 창원시 내서읍에서 자동차정비업체를 운영하는 지인도 합류했다. 다섯 남자는 내륙으로 길게 들어온 당항만을 내려다보는 자리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모터사이클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참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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