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불태워진 실레의 "예술"절규
문화예술은 권력의 액세서리 아냐

혐오스러운 포르노 그림이라고 법정에서 작품들이 불태워졌던 불우한 화가의 일생을 다룬 영화를 보았다. 영화 <에곤 실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작가 힐데 베르거의 원작 소설 <죽음과 소녀 - 에곤 실레와 여자들>을 영상화했단다.

우리나라의 박수근·이중섭-작품의 환금성으로 따지자면 문화후진국(?)인 한국 작가들의 작품가격이 상대가 되지 않지만-이라 할 수 있는 국보급 예술가인 에곤 실레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전통적인 고전주의 시각에서 보면 생경한 작품세계로 인체의 왜곡과 독특한 구도와 색채가 특징이며, 심리적이고 에로틱한 주제의 초상화와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음악에는 불멸의 예술가가 많지만, 미술에선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미미했던 오스트리아의 자부심이 된 화가이다.

"전 화가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킬 책임이 있어요!"

코리아에서 흥행에 실패했다는 예술영화를 보다 무지와 광기의 대한민국 현실이 오버랩되었다. 재판정에 선 시대를 앞서간 천재 화가가 판사에게 저항하는 목소리가 21세기 국정농단 탄핵정국의 서울에서 공명되었다. 예술을 일반인의 사고방식을 잣대로 평가하거나 훼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에곤 실레는 자신의 그림은 포르노가 아니고 예술작품이라고 분노했다.

반골 기질이 강한 전위적인 예술가들 대다수가 시대와 불화했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기득권, 고정관념에 갇힌 아집과 기성의 심미안으로 새로운 예술을 비난, 단죄했기 때문이다. 동시대 시각에서 다소 선정적일 수 있는 그림이지만 독창적인 창조의 길을 탐구하는 예술가의 자존심을 불태우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예술행정 근간인 '팔 길이의 원칙'으로 문화융성을 추구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며 소중한 예술적 가치를 말살한 현 시국과 맞물리며 여운을 남긴 명장면이었다. 저급한 음란물이란 비난을 받았던 인상주의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명화를 패러디한 대통령 누드화 '더러운 잠' 때문에 시끄러웠던 얼마 전의 견지망월(見指忘月) 광풍도 떠오르고….

'오리엔탈리즘'으로 제국주의에 근거한 서양 위주의 사고방식을 비판했던 문화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이란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언어의 창조자, 잊히고 무시당하고 억압된 이야기들에 대한 증인"이라 말했다. 그래서 시대정신을 담은 예술가를 존경한다. 그리고 미학적 기준은 도덕성, 실용성, 쾌락 등에 얽매이지 않는 자율성을 지녀야 한다며 아름다움 그 자체를 탐하는 유미주의 작가들도 사랑한다.

"인간을 위한 예술! 예술을 위한 예술! 무엇이 문제인가?"

다양한 문화생태계에서 작가정신은 자신이 추구하려는 아름다움, 자유, 진실, 정의의 꽃을 피우면 그만인 것을.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위정자들이 문제다. 문화예술은 권력의 액세서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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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강처럼 인위적으로 파헤쳐 자연환경 생태계를 교란한 것처럼 예술을 정치인의 입맛에 맞추는 편식은 예술을 죽이는 길이다. 28세의 나이에 요절한 오스트리아의 도발적 문제작가 에곤 실레를 죽음으로 몬 것이 스페인 독감이 아니라 야만적 사회의 모멸과 편견이 아니었을까?

국민의 관심 속에 숨가쁘게 달려온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곧 결론이 난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올해,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할 대선은 치러질 것이다. 정치교체든 정권교체든,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새로운 정부는 국민 분열적인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는 만들지 마시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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