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마지막 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16번지에 있는 전(傳) 구형왕릉입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피라미드형 돌무덤이기도 한 전 구형왕릉은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구형왕은 가야 10대 임금으로 '구해' 또는 '양왕'이라 하는데 김유신 장군의 증조부입니다. 521년 가야의 왕이 되었고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습니다. 신라 제30대 문무대왕이 구형왕의 5대 외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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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16번지에 있는 구형왕릉. / 김구연 기자

구형왕이 이곳 산청에 터를 잡게 된 것은 서기 532년이었습니다.

전쟁의 피해에서 백성을 구하기 위해 구형왕은 나라를 통째로 신라 법흥왕에게 넘겨줍니다. 그후 구형왕은 산청 방장산(지리산) 중 태왕산으로 들어가 생활하게 됩니다.

태왕산(왕산)은 지리산맥의 동북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데 가락국시조대왕 김수로와 연관이 있습니다.

서기 162년 김수로왕이 첫째 왕자 거등에게 양위하고 가락지품천(산청의 변한시대 지명) 방장산이란 곳에 태후와 함께 들어간 후 별궁을 짓고 살게 됩니다.

이때 지은 별궁의 이름을 태왕궁이라 했고, 태왕궁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태왕산이라 부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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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형왕릉 전경. / 김구연 기자

김수로왕은 38년간 이곳에 머물다 서거하였고 330년이 지난 532년 구형왕이 이곳에 들어옵니다. 태왕산에서 기거하다 돌아가신 구형왕은 유언으로 나라를 내어 주었으니 돌무덤으로 장례를 치르라고 유언합니다. 이에 산 아래 언덕에 돌무덤을 조성한 것이 전 구형왕릉이라는 얘기입니다.

전 구형왕릉은 우리나라 유일의 적석총으로 피라미드형 7단으로 작은 암석을 7.15m 높이로 쌓아 올려 만든 무덤입니다.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고 돌무덤의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고 쓰인 비석이 서 있습니다. 무덤 주변으로 1m 높이의 담이 둘러져 왕릉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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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락국양왕릉이라고 새겨진 비석. / 김구연 기자

왕릉 주변에는 등나무와 칡넝쿨이 뻗지 못하고 까마귀와 참새도 왕릉 위로 날지 않으며, 이끼나 풀이 자라지 않고 낙엽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비한 이야기가 깃들여 있다고 합니다.

조선 정조 17년에는 무덤의 서쪽에 있던 왕산사 나무상자에서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 옷, 활 등이 발견돼 '덕양전'이라는 전각을 지어 그 물품들을 오늘날까지 보존해오고 있습니다.

후손들은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1971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14호로 지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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