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밥 먹게 해준 농부 땀 안잊어야
정치인들 단 하루라도 농부 돼보라

산골 마을에는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제가 사는 나무실 마을에도 반쯤이 혼자 사십니다. 현동 할아버지(87세), 장대 할머니(77세), 방아실 할머니(77세), 하동 할머니(77세), 덕춘 할머니(76세), 설매실 할머니(76세), 서울 할머니(71세)…. 이렇게 스무 가구도 안 되는 마을에 일곱 가구가 혼자 사십니다. 제가 산골 마을에 들어와 농부가 된 지 13년째인데 돌아가신 분만 해도 열 분이 넘습니다. 경운기 사고로, 병으로, 치매로, 중풍으로, 노환으로, 때론 농사일에 골병이 들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루는 마을 이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산골 마을에 남자들은 골병이 들어 일찍 죽었을 거요. 경운기가 없던 시절에는 비탈진 산밭에 지게를 지고 거름과 곡식을 나르며 오르락내리락했지요, 그러니 모두 무거운 지게에 눌려 일찍 죽었을 거요." 그 말을 듣고 방에 들어와 밥숟가락을 드는데 가슴 한쪽이 텅 빈 것 같고, 어쩐지 가슴이 짠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거운 지게에 눌려 일찍 세상을 떠난 그분들(농부들)의 땀방울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찌 이 밥상 앞에 앉을 수 있으랴. 산골 마을 비탈진 논밭이 이 나라와 겨레의 목숨을 다 살려주었구나. 여태 내 목숨을 살려준 가장 귀한 밥을 먹고살면서도 이런 생각을 깊이 하지 못했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끄러웠습니다. 그 부끄러운 마음으로 밥을 먹고 시를 한 편 썼습니다.

밥상기도

하느님, 부처님!

이 밥을 먹어야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손가락 발가락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부디 단 하루도 잊지 않게 하소서.

늘 농부들의 땀방울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산골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비탈진 산밭을 오르내리며 농사일을 합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은 쉬지 않고 농사일을 합니다. 한데 모여 밥 한 그릇 나누어 드실 마을 회관도 하나 없이 말입니다.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아무리 말려도 움직일 수만 있으면 농사일을 합니다. 그분들이 아직 살아 계시기에 국산 콩으로 만든 구수한 된장국을 먹을 수 있고, 몸에 좋기로 세계에서 몇 번째 안에 들어간다는 국산 김치를 먹을 수 있고, 씹을수록 몸과 마음이 살아나는 국산 쌀을 먹을 수 있고, 몸속에 들어 있는 100가지 독을 없애준다는 녹두죽을 먹을 수 있고, 국산 밀로 만든 건강한 국수와 빵을 먹을 수 있고, 제가 겨울철에 가장 좋아하는 호박고구마를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 어찌 밥상 앞에 앉으면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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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산골 마을에서는 힘들고 위험한 농사일을 늙고 병든 농부들이 짓습니다. 도시에서는 건강한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100만 명이 넘게 거리를 떠돌고 있다고 합니다. 밥을 먹다가도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이 농촌에 들어와 신바람 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무너져가는 산골 마을을 살릴 수 있을까요? 정치인들이 한 달에 단 하루라도 아니, 일 년에 단 하루라도 농촌 들녘에서 땀 흘리며 일을 해 보면 좋은 대안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봄은 오고 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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