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경쟁·방황 등 경험 소재로
작가 9명 발랄하게 쓴 단편소설
저마다 해법으로 헤쳐온 삶 담아

몸에 착 붙는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깔깔거리는 학생들을 보며 "참 좋을 때다"라고 무심히 내뱉는 나를 발견하며 흠칫 놀란다.

학창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고, 세월은 흘러 이제는 그들을 바라보며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사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성적과의 싸움에선 늘 좌절했고, 친구와의 유치한 말싸움 뒤엔 세상에 홀로 남은 듯 괴로웠던 시절. 등수로 평가되고, 생리적 현상마저 통제받아야 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라고 하면 손사래를 칠 것이다.

<다행히 졸업>은 더할 나위 없이 나빴던,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유쾌했던 학교생활을 재기 넘치는 작가 아홉 명이 각각 쓴 단편소설로 되돌아본다.

1973년생부터 1993년생까지 아홉 명의 작가가 모여 각자 학창시절로 돌아가 1990년에서부터 2010년 당대의 삶을 기록하고 2015년 현재의 학교생활은 취재를 통해 그렸다.

잔뜩 화난 얼굴로 학교를 내팽개치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여학생 얼굴이 그려진 재기 발랄한 표지에 웃음이 났다. 지나면 모두 추억이라지만 마냥 그 시절을 미화하지 않은 기획의도도 맘에 들었다.

<다행히 졸업> 책 표지 일부.

이 책의 기획자는 "당신의 학창시절은 거지 같았습니까?"라는 물음을 통해 학교 잘 다닌 분보다 잘 못 다닌 분들을 우대해 모셨다고 한다.

급식 비리 사건에 맞선 유쾌한 아이들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장강명), 엄마의 말은 충고가 아닌 잔소리였고 엄마에게 나의 말은 대답이 아닌 말대꾸였던 모녀의 화해를 그린 '환한 밤'(김아정), 여중생의 방황을 회색빛으로 그린 '얼굴 없는 딸들'(우다영)을 소설로 담았다.

이어 월드컵을 맞이한 고3 남학생들의 유쾌한 소동 '백설공주와 일곱 악마들'(임태운),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3학년 2반'(이서영), 성적 지상주의와 극한의 경쟁에 몰린 아이들을 그린 '육교 위의 하트'(정세랑), '비겁한 발견'(전혜진)이 말하는 학창시절 이야기도 섬세하다.

꽉 막히고 답답했던 1992년 그 시절 이야기 '11월 3일은 학생의 날입니다'(김보영), 1990년 전교조 해직사건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나, 선도부장이야'(김상현) 등 <다행히 졸업>은 그 시절을 통과한, 혹은 그 시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보내는 달콤 쌉싸래한 편지다.

"길을 찾고 있는 거야. 원래 달빛을 쫓아가고 있는데 가로등 불빛이 자꾸 밝아지면서 길을 잃고 만 거야. 다시 달빛을 쫓아 헤매다가 결국 가로등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하고 저렇게 되어 버렸지.", "다시 달빛을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찾을 수 없지. 가로등 불빛이 꺼질 일도 없겠지만 애초에 달빛이라는 건 찾을 수 없어. 그냥 계속 찾아다니는 거지."(78쪽)

그럼에도, 뭐든 할 수 있었고 실컷 좌절할 수도 있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무모하지만 찬란했던 시절임을 환기한다.

"행정실장과 학교 교감은 날지 않은 새들 같았다. 마지막을 날아 본적이 언제인지도 모를 비둘기들이었다. (53쪽)

420쪽, 창비,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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