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누명 쓴 소년 16년 만에 '무죄'선고
실화 바탕 선명한 주제…"사법부 잘못 사과해야"

15살 어린 소년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왜 10년이나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야 했을까.

차라리 죄지은 만큼 벌 받는 지옥이 공평할까. 헬조선에서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몇 년 전 <변호인>을 보며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에 울분을 느꼈다.

헬조선은 이제 "변호사법 제1조 1항,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라는 말에도 씁쓸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재심>은 지난 2000년 익산 약촌 오거리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사건, 일명 '약촌 오거리'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택시기사는 12차례나 흉기에 찔려 무참히 살해당했고,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현우(강하늘)는 증거도 없이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더 기가 막힌 건 몇 년 뒤 진범이 자수했음에도 재수사는 흐지부지됐다는 것이다.

영화는 속물근성 가득한 변호사 준영(정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건설사를 상대로 크게 한몫 챙기려 했던 준영은 재판에서 패소하고 알거지 신세가 된다.

대형 로펌 취직을 위해 준영은 마음에도 없는 무료 법률 봉사를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현우의 억울한 사연을 듣는다.

명성을 위해 현우에게 접근했던 준영은 어느새 울분이 차오르고 가슴속 정의가 꿈틀댄다. 준영은 진심으로 현우에게 재심을 제안한다.

어찌 보면 <재심>은 지난 9일 개봉한 <조작된 도시>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현실과는 그저 동떨어진 게임 같은 전개로 부조리한 세상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린 <조작된 도시>와 달리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재심>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헤어나올 수 없는 현우 모자가 겪어야 했을 고통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법과 공권력이 힘없고 백없는 한 개인의 인권을 어떻게 짓밟을 수 있는지, 편견과 권력 앞에 죄와 무관한 사람들이 마주해야 했던 절망적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10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 있었던 것도 억울한데 근로복지공단은 사건 피해자에게 지급한 4000만 원에 이자 1억 3000만 원을 더한 1억 7000만 원의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수사와 절차를 무시하는 형사는 강한 자에게 더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다.

죄책감에 자수했던 살인범의 친구는 어떻게 되었나.

영화 <재심> 스틸컷.

자식의 기막힌 재판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현우 엄마는 끝내 눈이 먼다.

두 눈을 부릅뜨고도 자식의 억울함을 막지 못한 그녀에게 눈은 이 부조리한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을까.

재심으로 1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지만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세월을 범죄자라는 낙인에 찍혀 보내버린 현우의 시간과 상처는 어찌할 것인가.

현우와 진범의 추격전, 현우가 경찰들과 벌이는 액션 장면 등은 클리셰(진부한 표현) 가득한 긴장이 다소 과하다 느껴지지만 감독은 현우가 아닌 준영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며 좀 더 주제를 선명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

"15년 전, 대한민국 사법부가 한 소년에게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사과할 기회를 주기 위해 여기에 서 있습니다. 이 재판의 결과가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재심이 필요없는 세상이 되어야겠지만 잘못했다면 그 어떤 권력 기관이라도 용서를 구하는 상식적인 세상을 위한 외침이다.

속물 변호사에서 입체적 변화를 겪는 준영 역의 정우는 특유의 털털한 웃음과 매력으로 영화의 중심을 잡고, 현우 역의 강하늘은 그저 신파가 아닌 진정성 있는 연기로 몰입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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