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지사 발언 배경 저의 저울질
생각·행동 공공에 부합한지 살필 일

익숙한 말 중에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게 있다. 좋은 뜻을 두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짓말이다. 스스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게 하려는 뜻에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꼭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충격과 상처를 줄여주기 위해서라면 사실을 숨기는 것도 때로는 용납된다는 말이라 하겠다.

최근에 선의라는 말이 논란되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 강 사업과 박근혜 대통령의 미르·K스포츠재단을 예로 들면서 처음에는 선의로 시작한 사업이 아니겠느냐고 해서다. 아마도 안 지사가 대통령 후보군에 속하면서 지지율이 가파르게 오르는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이렇듯 논란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 일을 코앞에 둔 시점이 아니었어도 이토록 요란하게 논란이 일 것 같지가 않다.

자 한 번 곰곰이 따져보자. 선의로 여기자는 말만 놓고 말이다. 사회적 영향과 공공성 이야기는 다음 순서로 하고. 상대방의 말과 행위를 옳고 그름을 떠나 일단 선의의 동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는 것. 그것을 내 이해와 판단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라 권장할 일이라고 본다. 모든 갈등과 대립은 상대방의 말과 판단을 너무 내 중심으로 해석하고 단정하는 데서 비롯될 때가 잦기 때문이다.

상대의 모든 선택을 선의의 발로라고 여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진실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했다 해도 마찬가지로 선의의 발로라고 봐야 한다. 자기를 위한다는 생각이 공공의 이익과 충돌을 일으켜서 문제지 그 사람의 처지와 수준에서는 자신을 위한다는 게 그런 결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의 이익과 충돌하는 것도 선의와 악의가 충돌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주관적 선의끼리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상대를 악의라고 보고 나를 선의라고 여기는 순간 오류와 독선에 빠질 수 있다.

상대방의 선의가 공동체와 이웃에게 고통이고 해악이라면 상대방은 그 부조화를 해결할 과제를 안게 되는 것이다. 비난과 공격에 앞서서 상대방의 과제가 잘 풀리도록 지지하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겠다. 비난과 공격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자신의 과제를 잘 해결하게 하는 조력자의 자세를 잃지 않는 게 좋다. 가족이나 친구가 시한부 불치병 진단을 받았다고 하자. 환자는 스스로의 생사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의사의 진단을 알려야 할까 숨겨야 할까? 숨기는 게 선의인가. 알리는 게 용기이고 배려인가. 쉽지 않다. 내 얘기는 어떻게 하든 다 선의라는 것이다.

원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안 지사의 발언은 두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선의로 한 것일까? 아니면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일까? 이른바 보수층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는. 안 지사의 선의 발언을 놓고 그것이 선의냐 정치적 의도가 있느냐 따져본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긴 하다. 정치인 얘기는 이렇게 그 배경과 저의가 저울질당하는 게 현실이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부터 따지다 보니 사실의 전달도 부실해진다. 안 지사의 그다음 발언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말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이라 상태가 선명하지는 않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는 것이었는데 "……지성이라는 것은 해부하고 분석하는 능력이라고 하는데 그게 남을 의심하는 능력이어서야 되겠는가?"라는 말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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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과 행동이 사회 공공성에 부합하는지 먼저 살필 일이고, 상대의 그것을 선의로 여기면서도 사회적 영향과 공공의 이익에 맞는지 식별할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은 내 몫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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