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유적 유물 여행] (4) 황금이 나지 않는 황금도시
황금 마스크·귀걸이·띠 등문명 발달·위세 짐작게 해
3대 비극 잉태한 목욕탕 고딕양식 발판 수로 입구 신화-현재 잇는 유적 주목

우리는 이제 강력했던 그리스 고대 도시 미케네 성곽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거인족이 쌓았다는 성벽을 지나고, 그 유명한 사자의 문을 통과해서 말이지요.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으로 동그랗게 깊이 파인 구덩이와 그 주변을 에워싼 독특한 돌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미케네 왕족의 원형무덤입니다.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

지난 기사에서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 터키 트로이와 이곳 미케네 유적을 발굴하는 데 성공하면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이야기로만 존재하던 트로이 전쟁을 '역사'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슐리만이 1876년 발굴에 성공한 미케네 유적이 바로 이 무덤입니다. 당시 쌍둥이 아이, 여자 9명, 남자 8명의 유해가 나왔는데, 몸 전체가 금으로 싸여 있었다고 합니다. 묘지가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배수구 시설을 한 것도 놀랍습니다.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

무덤은 황금으로 된 유물들로 가득했습니다. 호메로스가 '황금이 흘러넘치는 미케네'라고 표현한 그대로였지요. 미케네 문명을 상징하는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도 이곳에서 나왔습니다. 슐리만은 이 무덤이 아가멤논 왕의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이 연구해보니 아가멤논 왕 시대보다 300년 정도 앞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아쉬워하는 슐리만을 위해 학자들은 '그래도 그냥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라고 불러줄게'라고 했다지요. 어쨌거나 당시 왕족의 무덤인 것은 확실했으니까요. 황금 마스크는 죽은 이들이게 씌우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나요? 네, 이집트 피라미드에서도 나오는 것입니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같은 것이죠. 미케네 문명이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근거가 되겠습니다.

그리스 고대 황금 도시 미케네 유적 안 원형무덤. 1876년 발굴 당시 수많은 황금 유물이 나왔다.

◇미케네의 놀라운 금 세공술

미케네 성벽 안 원형무덤에서 나온 유물은 모두 아테네에 있는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있습니다. 보통 그리스에서 유물이 발굴되면 바로 근처에 박물관을 지어 보관하는데요. 미케네 유적지에서 나온 것은 예외입니다. 이는 슐리만의 못된 버릇(?)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터키에서 트로이를 발굴할 때 많은 유물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습니다. 그래서 미케네 유적을 발굴할 때는 감시를 받으면서 했다는군요. 그리고 나온 유물을 모두 당시 그리스 조지 왕에게 바쳤답니다. 조지 왕은 이를 고고학박물관에 전시한 것이고요. 당시 발굴한 유물 중 금 종류만 14㎏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있는 미케네유물들.

아무튼, 미케네 유물이 있는 곳은 마치 황금의 방 같습니다. 그만큼 금으로 된 것들이 많으니까요. 사실 황금 마스크는 이집트 것보다는 조금 조잡해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유물은 경이로울 정도로 정밀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단검 표면에 새겨진 그림인데요. 전사와 사자들이 싸움을 하는 장면입니다. 쓰러진 사자도 있고, 도망가는 사자도 보입니다. 미케네인들의 용맹함을 나타내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 귀걸이, 머리 장식, 완장, 다리에 두르는 띠, 옷핀 등 화려한 금 장식들이 많습니다.

◇그리스 비극을 남긴 왕궁터

계속해 성벽 안을 둘러봅니다. 원형무덤을 지나면 왕궁터가 나옵니다. 왕의 침실도 있고, 화로도 있고, 목욕탕이 모두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목욕탕은 그리스 3대 비극을 잉태한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그리스 최강 아가멤논 왕은 땅에서도 죽일 수 없고, 물에서도 죽일 수 없다는 신탁을 받습니다.

그가 트로이 전쟁을 치르는 10년 동안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바람이 났지요. 전쟁에 나서면서 자신들의 친딸을 신에게 승리를 위한 제물로 바친 데 대한 앙심도 있었을 겁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왕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왕비와 정부는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물에서도 땅에서도 죽일 수 없는 아가멤논을 어떻게 죽였을까요. 그리스 신화의 유명한 비극 중 하나가 바로 이 목욕탕에서 시작됩니다. 아가멤논이 목욕탕에 들어가면서 한 발은 땅에, 다른 발은 물에 있을 때 왕비의 정부 아이기스토스가 뒤에서 도끼로 쳐서 죽인 거죠.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도 죽여 후환을 없애려고 합니다. 하지만, 유모가 자신의 아이를 대신 내주며 오레스테스를 밖으로 빼돌리죠. 오랜 방황을 통해 성장한 오레스테스는 아폴론 신전에서 복수를 하라는 신탁을 받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친어머니를 죽이며 아버지 복수를 완성하지요. 그렇지만, 이후 오랫동안 친모를 살해한 죄와 저주를 품고 살게 됩니다. 오레스테스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가 품은 3대 비극 중 하나랍니다.

아가멤논 왕이 살해당한 목욕탕이 있던 흔적.

◇뱀을 섬기던 미케네인

왕궁터를 지나면 흔적도 뚜렷하지 않은 아테네 신전이 나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건물입니다. 당시에는 웅장했겠지요. 신전을 지나면 작은 공간으로 구분된 폐허가 나오는데요. 이곳이 귀금속을 가공하던 곳이랍니다. 여러 금 세공품이 이곳에서 출토되었거든요. 아시아 금, 유럽 금, 지중해 금 등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한 금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미케네 지역은 금이 나지 않는답니다. 박물관에서 본 것처럼 금을 정밀하게 세공해서 팔고 그것으로 다시 금을 사 와서 가공했다는군요. 그런데도 미케네는 '황금 도시'라고 불렸습니다. 손재주가 뛰어나기도 했겠지만, 전성기 미케네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곳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비밀 수로 입구가 보입니다. 그야말로 요새였던 고대 도시 미케네는 은밀하게 물길을 도시 지하로 끌어들여서 썼습니다. 수로 입구는 기둥 없이 돌을 쌓아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서양 건축 양식 중 고딕 양식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는군요. 고딕은 '야만적'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건축 양식을 그렇게 부르더니 결국 중세를 대표하는 건축 양식이 되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입니다.

미케네 유적 박물관에 있는 뱀 모양 도기.

미케네 유적은 대부분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있지만, 근처 미케네 유적 박물관도 들러볼 만합니다. 특히 뱀 모양 도기와 환각 상태인 듯한 주술사 조각이 재미있습니다. 미케네인들을 포함한 그리스지역 사람들이 뱀을 섬긴 것은 뱀이 대지의 여신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의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뱀독을 마취제나 진통제로 쓰기도 했고요, 뱀이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니 '재생'의 의미도 있거든요.

비밀 수로로 가는 동굴 입구. 기둥 없이 삼각형 모양을 이룬 부분에서 중세 고딕양식이 나왔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