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에 울려퍼진 "국정교과서 배우기 싫다"
학교측 자율학습 취소 문자 발송에도
학부모·학생 등교 국정화 반대 집회
"교장 선생님 독단적 추진"사과 촉구
교장 "외부 압력 개의치 않지만"
추후 연구학교 추진 변경 가능성도

전국적으로 단 1곳. 이번 학기부터 새 국정 역사교과서를 쓸 연구학교 숫자입니다. 애초 3곳이었는데, 학내 반발 등으로 철회하고 1곳만 남았습니다. 경북 경산에 있는 문명고등학교입니다. 교육부는 20일 문명고를 연구학교로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문명고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학생·학부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교장도 학내 반발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입니다. 관련 기사 보시죠. /편집자 주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1곳…교육부 "희망학교에 보조교재로 배부"

다음 달 새 학기부터 국정 역사교과서를 쓰게 될 연구학교로 경북 경산의 문명고등학교 1곳이 지정됐다.

교육부는 경북교육청이 2015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에 따라 국정 역사·한국사교과서를 주교재로 활용할 연구학교로 경산 문명고등학교를 지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앞서 각 시·도 교육청이 연구학교 운영 신청을 받은 결과 영주 경북항공고와 경산 문명고, 구미 오상고 등 경북에서만 3곳이 신청서를 냈다. 이 가운데 오상고는 학내 반발과 서류 미비 논란으로 하루 만에 신청을 철회했고, 경북항공고는 연구학교 신청 전 거쳐야 하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지 않아 교육청 심의에서 탈락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요구하는 경북 경산의 문명고 학생들이 20일 오전 학교 운동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이달 연구학교 운영계획을 세우고, 수시상담과 보고회를 바탕으로 국정교과서를 활용한 교수학습방법을 개발하는 등 연구학교 운영을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문명고 역시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이 심해 국정교과서 채택을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과 경북지역 관계자에 따르면 문명고는 학부모 측에 23일까지 연구학교 운영에 대해 검토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를 쓰게 된 곳이 문명고 한 곳에 불과해진 것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이 학교에 '외압'을 행사해 많은 학교가 연구학교 신청을 하지 못했거나 철회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교육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원하는 학교를 파악하고서 국정교과서를 무료로 지원해 보조교재로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야 하는 교육자료가 아니라 보조교재 형태로 사용하는 안을 마련한 것 역시 국정교과서를 어떻게든 현장에 적용하려는 교육부의 '꼼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문명고가 반대시위를 예상해 학생들에게 20일과 21일 등교를 하지 말도록 보낸 문자.

◇문명고 학생·학부모 "연구학교 신청 철회" 시위…교장은 병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를 신청한 문명고에서 20일 학생과 학부모가 신청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오전 8시 50분을 넘어 학교에 모여들기 시작한 학생 등은 30분 뒤인 오전 9시 20분께 100명을 훌쩍 넘었다.

문명고는 전날 오후 5시께 학교 공식 전화번호로 재학생에게 '2월20일(월)∼21일(화)은 자율학습 운영을 하지 않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문명고 드림'이란 문자 메시지를 전송했다. 학교 측은 자습을 하지 않는 별도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교사들도 학생이 문자를 받고 나서야 이 사실을 파악했다. 이와 관련해 문명고 A 교사는 "20일께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결과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학생들이 자습하러 나오면 연구학교 철회 집회를 열까 봐 아예 모이지 못하게 결정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2학년 최모 군은 "문자에 상관없이 연구학교 철회 주장에 힘을 보태고자 등교했다"며 "교장 선생님이 독단적으로 추진한 일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생과 학부모는 애초 교장실이 있는 본관 1층 복도에서 집회할 예정이었으나 김태동 교장이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아 장소를 운동장으로 변경했다.

이들은 '국정교과서 철회', '학교 주인은 재단이 아닌 학생이다' 등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국정화 반대한다", "교장 선생님 각성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문명고의 학생들이 포털 다음 아고라에 '문명고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을 철회해 달라'는 청원에 하루만인 19일 오후 8시 30분쯤 6900명이 넘게 서명했다. /오마이뉴스

한 학부모는 자유발언에서 "국가에서 역사를 일률적으로 정해서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치 이념 논리로 학교가 흔들리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2학년 신모 군은 "교육은 학생이 받는 것인데 왜 학교가 학생 의견을 듣지 않는지 의문이다"며 "교장 선생님과 이사장님은 당장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또 정모 군은 "교장 선생님이 연구학교 철회를 약속해 놓고도 무작정 버티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기 싫어 집회에 참가한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21일에도 집회를 열기로 한 뒤 오전 11시 좀 넘어 해산했다.

◇문명고 교장 "학생 반대 마음에 걸려…외부압력은 개의치 않아"

문명고 김태동 교장은 20일 "학생들이 반대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며 연구학교 추진을 변경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김 교장은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외부 압력은 개의치 않는다"며 "그러나 학부모, 특히 우리 학생이 반대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국정교과서 금지법이 임시국회에 계류돼 있다"며 "연구학교가 되고 싶어도 금지법이 통과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연구학교 지정이 안 되더라도 국정 역사교과서를 보조교재로 쓸 수 있는지는 추후 생각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또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내에서 반대 의사 표현하고 집회하는 것은 좋지만, 지금까지 충분히 했으니 자제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당초 경북에서만 연구학교 신청이 20곳 정도 된다고 했는데 유일하게 문명고만 남아 부담스럽다"며 곤혹스럽다는 반응도 보였다.

이와 관련해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국정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이 완료된 만큼 일정대로 추진하겠다"며 "해당 학교가 지정 철회를 요청해 오면 교육부 방침에 따라 논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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