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괴로운데 '장난'이었다고?
자신이 당하고 즐거우면 그땐 '장난'

북한 김정남을 말레이시아에서 암살한 혐의로 체포된 한 여성은 "장난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한다. 며칠 전에는 지난해 교실에서 '의자빼기 장난'을 치다가 친구의 꼬리뼈를 부러뜨린 초등학생을 대신해 부모가 치료비를 물어주라는 판결도 인천에서 있었다. 지난해 말 김해의 한 복합상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는 중학생들이 '장난'을 치다 일어났다고 경찰이 밝혔다.

사회 곳곳에 '장난'이라는 말이 넘친다. 남들에게 조금 피해를 줘도 '장난'이라는 말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하고, 화를 내는 상대를 도리어 속 좁은 사람 취급하기도 한다.

'장난'은 '주로 어린아이들이 재미로 하는 짓. 또는 심심풀이 삼아 하는 짓'을 말한다. '짓궂게 하는 못된 짓'이라는 뜻도 있지만, 이는 '장난 전화' '장난 편지' 같은 경우에 쓰인다. '장난'이 되려면 행위를 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모두 '재미'가 있어야 한다. 즉 아이들의 소꿉장난처럼 일종의 놀이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재미가 빠진, 일방의 재미만 있는 것을 장난이라 할 수 있을까.

꼬리뼈를 다친 초등학생의 사례는 두 아이가 같이 놀던 상황이 아니었다. 한 아이가 발표를 하고 앉으려는데 다른 아이가 의자를 뺐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게 되는 아이는 즐거울 리 없다. 창피와 망신을 느끼는 그 순간 이것은 장난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몇년 전 경기도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팔뚝을 물어 상처를 남긴 원장은 '장난스럽게' 물었다고 항변했지만, 그걸 장난이라며 넘어갈 보호자는 없다.

식재료나 음식과 관련해 위생 문제가 터질 때 "먹는 것으로 장난치지 마라"라는 말을 종종 한다. 식재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난이라며 웃으며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장난'이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새 학기를 앞두고 있다.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거나 개학하고 나면 적응을 잘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거나 왕따로 고민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다른 아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아이들은 문제가 불거지면 하나같이 "장난이었다"고 말한다. 일부 어른도 "아이들끼리 장난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무심히 넘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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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뇌전증학회는 지난 9일 대한내과의사회와 대한소아과학회, 대한가정의학회, 대한신경과의사회, 대한간호협회 등이 참여하는 '범의료 자살예방연구회'를 창립하기로 했다. 연구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자살이다. 각자 나름의 이유로 극단의 선택을 했겠지만, 학교와 가정에서의 소외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리라 짐작된다. '철없는 장난'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벼랑 끝으로 몰아 극단의 선택을 하도록 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장난 때문에 고통 받고, 목숨을 끊고, 다치고, 업무에 지장이 있다면, 그건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학대이고 범죄다. 한 가지만 명심하자. 내가 똑같은 일을 겪어도 재미있다며 웃을 수 있을 때만이 '장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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