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냐 보수냐는 가치 선택의 문제
박근혜 최순실의 부정 축재는 범죄

'다르다'라고 써야 할 자리에 '틀리다'라고 쓰는 경우를 자주 본다. 위키 낱말 사전에서는 두 단어 차이를 품사 문제로 해석하고 있다. '다르다'는 대상을 꾸며주는 형용사이고 '틀리다'는 '그릇된 행동'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다르다'는 '같지 않다'로 쓸 수 있고, '틀리다'는 '맞지 않다'로 고쳐 쓸 수 있다.

지금도 스포츠 신문이나 잡지에 잘못 쓰고 있는 표현 중 하나가 '틀린 그림 찾기'라는 코너다. 두 그림의 다른 부분을 찾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는 '다른 그림 찾기'로 고치는 게 맞다.

엄연히 다른 두 단어를 이처럼 잘못 쓰게 된 원인은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고 획일성을 강요하는 가부장 문화와 군부독재 정치의 나쁜 잔재일는지 모른다. 일상적으로 잘못 써왔던 단어에 대해 반성과 각성이 일어난 시기도 군사독재가 청산되고 민주주의와 다양성, 열린 사고가 강조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틀린 주장'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면 '견해가 다를 뿐'이라 억지 부리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보는가.

좋아하는 색깔을 고르는 문제는 당신과 나의 취향이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고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예전엔 '다른' 견해였으나 지금은 '틀린' 사실도 있다.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 같은 학자들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 할 때만 해도 천동설과 지동설은 각기 '다른' 견해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것을 견해차라 말하지 않는다. 천동설은 '틀린' 주장일 뿐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정치와 제도도 마찬가지다. 자유와 평등, 인권, 민주주의, 생명 존엄과 같이 인류가 합의하고 만들어 온 보편적인 가치 기준을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우리는 단지 '입장 차이'라 말하지 않고 '틀린 행동'이라 말한다. 근친상간이나 식인 습관, 동족 살해, 인종 청소 같은 문제들도 인류가 역사를 통해 성찰하고 극복해 온 잘못된 관습들이다.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이 김기춘 실장과 더불어 작성한 블랙리스트는 '누구나 정치적 입장과 신념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틀린' 행동이었기 때문에 구속수사를 받고 있다. 각종 증거와 진술에 의해 그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또 어떤가. 최순실과 박근혜가 개인 친분을 이용해 국가기관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재벌기업과 정경유착해 천문학적인 돈을 부정축재 했다는 게 사태의 본질이다.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는 '분배'와 '성장'이라는 경제적 가치기준에 따라 정치적인 입장을 달리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이지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자칭 한국의 보수들은 법률을 위반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한 명백한 범죄행위들조차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 강변하고 있다.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서는 언론탄압과 계엄령 선포, 군사쿠데타를 부추기는 반헌법적 구호까지 내지르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견해를 달리하는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틀린' 행동이며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잘못 쓴 이유가 다양성을 부정하는 가부장문화와 군부독재 영향 때문이라면, '틀린' 것을 '다른' 것이라 용납하는 문제는 일제 부역자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현대사의 오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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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은 파시즘은 국가가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아니라 명백히 인류를 향한 범죄행위이며 '틀린' 정치행동이었다. 때문에 70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는 나치와 파시즘에 부역한 언론인과 정치인을 '콜라보'라 칭하며 법의 심판대에 올려 처벌하고 있다. '틀린 것'이 제대로 심판받을 때 '다른 것'이라는 다양성도 제대로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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