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음반시장 LP판 발매
영화 <패왕별희> 재개봉
아날로그 감성 자극
상업화 속 틈새 공략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자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해거름' 간판에 영업 시작을 알리는 불이 켜진다. 하나둘 손님이 들어차기 시작하더니, 다들 LP판을 마주한 바에 자리를 잡는다. 심동해(39) 씨가 술잔을 옆으로 제쳐 놓고는 메모지에 무언가를 써서 고굉무(54) 사장에게 넘긴다. 고 사장이 고개를 들어 심 씨에게 눈짓을 하고는 LP판 하나를 꺼내 든다. 하얀 천으로 쌓인 먼지를 닦고는 LP판을 턴테이블에 살며시 내려놓는다. 스피커에서 자신이 신청한 음악이 나오자 심 씨가 눈을 지그시 감고 감상에 빠진다.

아이유부터 김흥국까지 적잖은 가수들이 LP 앨범을 내고 있다. 최근 발매한 한정판 LP판이 중고시장에서 발매 가격보다 높은 가격대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음악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던 아날로그 LP판이 부활했다. 영화 시장에서는 디지털 리마스터링 등 재개봉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복고 문화를 꾸준히 찾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지난 16일 창동 해거름을 방문한 심 씨는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 지인을 만나고자 창원을 찾았다가 LP 음악에 이끌려 해거름을 찾았다. 심 씨는 "지난해 6월 방문한 이후 8개월 만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도 LP를 수집하고 있다는 심 씨는 '사람 냄새'가 LP 매력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마다 지닌 색깔이 다른 것처럼, LP판을 틀 때 나오는 잡음이 고유 매력"이라며 "CD나 테이프로 듣는 음악과는 다른 맛이 있다"고 말했다.

심 씨 이외에도 해거름을 찾는 손님 대부분이 LP 음악을 선호한다. 고 사장은 "어린시절 LP판으로 음악을 들었던 이들에게 LP 음악은 당시를 추억하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며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주름이 생기는 것처럼 LP판 잡음 또한 같은 의미에서 정감있게 들린다는 손님도 많다"고 LP 매력을 설명했다.

김흥국의 재발매 앨범 <레게의 신>.

고 사장은 1950년대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음반사 중 한 곳인 '도미도레코드' 복각 LP판을 소개했다. 손바닥 크기의 도넛 LP판에 양면에 한 곡씩 옛 음악이 수록된 앨범이었다.

그는 "최근 발매되는 복각 LP판은 역사적 가치도 있다"며 "현재와 근대사를 연결하는 문화교과서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꾸준한 복고 문화 수요 사례는 영화 시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달 영화 <반지의 제왕 3부작> <델마와 루이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등이 재개봉했다.

이 밖에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라빠르망> <패왕별희>도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재개봉 영화는 열풍을 넘어 시장에서 당당히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재개봉 영화는 극장가 비수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도 꼽힌다. 지난 2015년 재개봉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당시 예매율 2위를 기록했다. 10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가 신작 영화를 제치고 관객을 불러 모았다.

재개봉 영화가 인기를 끌자 테이프 방식으로 보존된 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하는 경우도 늘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은 100분에 2000만 원가량 비용이 든다고 알려졌다. 비용 대비 효과가 좋다는 설명이다.

박재현 경남영화협회 사무처장은 재개봉 영화가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상업적인 면을 떠나서 재개봉 영화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관객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거나, 예전에 극장에서 해당 영화를 관람하지 못한 관객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등 순기능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장국영 주연의 <패왕별희>.

종합해보면, 문화예술 시장에서 부는 복고 현상은 과거로 퇴행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없는 부족한 감성을 채우는 기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복고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창원 음악감상실 파랑새 이원우 대표간사는 "대중화 측면에서 LP 음악에 관심이 많아지는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너무 쉽게 아날로그 음악을 접해 그 매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별로'라고 생각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날로그 음악이 부흥과 침체를 경험하면서도 지금까지 수요가 있는 걸로 미뤄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