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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서 뻗은 산줄기 사방 흘러 터전 안았네

[경남의 산] (5) 고성
무량·천왕·적석·무이산…고성 감싸는 '풍성함'으로
읍치와 가까운 철마봉, 무량산 대신해 진산 활용
기생 노닐던 무기산·고분 나라 지킨 '전설'남기기도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7년 02월 17일 금요일

◇무량산과 송학동 고분군

고성이 한눈에 보인다는 거류산, 정상에 오르고 보니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너른 들판이다. 그리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물줄기. 고성 땅에 기원전부터 사람이 제법 모여 살아왔다더니 과연 그럴만하게 풍성했겠구나 싶다. 여기에 바다를 끼고 있으니 쇠를 만들어 수출하던 고대 국가의 중심지로도 손색이 없다.

고성을 둘러싼 산세는 험준하진 않으나 풍성하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13개 정맥 중 낙동강 남쪽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洛南正脈)과 그 줄기가 고성 땅을 두루 감싸고 지나기 때문이다.

◇옛 지도로 본 고성 산

우리나라 산맥을 잘 표현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1861)를 보면 백두대간의 끝자락, 지리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가 동남쪽으로 흘러 진주, 하동, 사천을 지나 고성에 이른다. 고성 땅을 지키는 진산(鎭山)은 무량산(無量 山· 542)m 이다.

고성읍에서 바라본 무량산(왼쪽 높은 봉우리). 산줄기가 흘러내려 이곳 사람들 터전이 되었다. /유은상 기자

낙남정맥은 무량산에서 고성 땅을 고즈넉이 내려다본 다음 북쪽으로 천왕산(天王山·581m)으로 이어진다. <대동여지도>에는 천왕점(天王岾)이라 적혀 있다. 점(岾)은 높은 산의 마루를 이른다.

천왕산을 고성의 주산(主山)으로 보는 옛 기록이 더러 있다. 낙남정맥이 계속해 북쪽으로 고성과 마산의 경계를 이루는 적석산(498m)으로 향해 가는 동안 서쪽으로 가지가 하나 뻗는데 그곳에 고찰 옥천사를 품은 연화산이 솟아 있다. 다시 무량산으로 돌아와 서남쪽으로 향하면 무이산(549m)이 우뚝하다. 신라 의상대사가 금산을 가려다 관세음보살이 꿈에서 일러준 대로 무이산을 찾고는 크게 감동해 문수암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지도를 보면 무이산은 수태산(570m), 향로봉(479m)과 함께 고성의 서남부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무량산에서 동남쪽으로는 고성읍을 지나면 남산(南山)이 나오는데 고성 땅의 안산(安山)으로 보면 된다. 남산은 지금의 남산공원이다.

남산에서 이어진 산줄기는 벽방산(651m)으로, 다시 거류산(571m), 구절산(559m)으로 이어진다. 벽방산은 지금 고성과 통영의 경계로 주봉이 통영에 속한다. 그래서 통영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통영이 고성에서 분리되기 전까지는 고성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다. 그래서 고성 사람들이 기우제를 벽방산에서 지냈다고 옛 기록은 전한다.

대부분 옛 지도에서 거류산을 유민산(流民山)으로 적고 있는데, <1872년 지방지도>는 거류산으로 돼 있다. '거류산은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이라는 기록이 있다.

◇되찾은 진산 무량산

지난 2014년 4월 4일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명 변경 고시를 하나 발표한다. 이때 산봉우리 4개가 이름이 바뀐다. 천왕산, 무량산, 철마봉, 서재봉이다. 이전까지 천왕산은 무량산으로, 무량산은 대곡산으로, 철마봉은 철마산으로, 서재봉은 천황산으로 불리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일제가 지도를 만들면서 바꾼 이름을 계속 써 온 것이었다. 명산에 쇠말뚝을 박은 것처럼 일제는 조선 땅의 정기를 끊고자 지명을 바꾸기도 했다. 2013년 고성문화원 향토사연구소는 일제 강점기에 바뀐 이름을 바르게 고쳐달라고 국토지리정보원에 건의했다.

옛 기록들은 한결같이 고성현에서 서쪽으로 10리에 무량산이 있고, 15리에 천왕산이 있다고 적고 있다.

이를 토대로 문헌들을 살펴보면 대곡산이 무량산이고, 무량산이 천왕산이어야 앞뒤가 맞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름을 되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전 이름을 알고 낙남정맥을 찾는 이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그런데 남해나 함양 같은 고을과 달리 고성은 읍치(현 고성군청 자리)에서 진산까지 거리가 제법 멀다. 진산치고는 접근성이나 활용성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고성문화원에 물어보니 실제 진산 노릇을 한 봉우리는 현에서 10리나 먼 무량산 정상이 아니라, 4리 정도 떨어진 철마봉이었다. 무량산에서 뻗어나온 줄기는 오똑한 철마봉(417m)과 서재봉(193m)을 지나 고성벌판으로 내려선다. 고을 현령은 1년에 두 번 철마봉에서 제를 지낸 후 무량산에서 제를 지냈다고 기록했다.

무기산 위에 자리한 송학동 고분군. /유은상 기자

◇무기산과 기생 월이

<대동여지도> 등 여러 옛 지도에 읍치 북쪽에 무기산(舞妓山)을 표시하고 있다. 고려시대 고성 수령인 고주자사(固州刺史)가 기생을 데리고 이곳에서 춤추고 놀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헌에서 2리 정도 떨어진 야트막한 동산이고, 무덤 위에 밥그릇을 엎어놓은 것 같은 무덤이 있대서 '독뫼산'이라고도 불리던 곳이다. 바로 고성읍 송학리에 있는 가야시대 유적 '송학동 고분군'을 말한다. 아마도 옛날에는 고분이라기보다는 독특한 언덕 정도로 생각하고 고을 수령이 기생을 데리고 위에서 놀았던 것 같다. 물론 마을 주민들도 농사가 끝나면 고분군의 널찍한 장소에 모여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이 무기산 앞에는 무기정(無妓亭)이란 술집이 있었다. <해동지도>에 거의 동헌과 비슷한 크기로 그려 놓은 것으로 봐서 꽤 유명했거나 중요한 곳이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 이 무기정 주변 주막에 있었다는 기생 월이 이야기를 고성문화원에서 만난 정해룡(사진) 시인에게서 들었다.

정해룡 시인.

정 시인이 태어난 곳이 바로 이 무기정 주변이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서 기생 월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배경은 임진왜란이다. 전쟁을 일으키기 전 일본은 밀사를 파견해 조선 해변 지도를 수집했다. 부산에서 시작해 남쪽 해변을 탐색하던 밀사가 고성에 도착해 무기정에 묵게 됐다. 이때 월이란 기생이 밀사가 수상한 것을 눈치 채고 그가 곯아떨어진 사이 그의 품에서 해안 지도를 발견한다. 그리고 당항포에서 고성 앞바다에 이르는 가짜 바닷길을 그려 넣는다. 이 지도가 이후 이순신 장군이 당항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남모르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주민들 사이에 구전하는 전설이다.

※참고문헌

<고성의 겉살과 속살을 찾아서>(집필 정해룡·사진 류태수, 고성문화원, 2013)

<고성군지>(고성군지편찬위원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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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뮤지컬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