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역사> 고대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당대 식문화·재료 등 한눈에
그리스인 포도주 즐기는 법 
17세기 귀족 연회 모습도 담아

최근 몇 년 동안 필자는 편식에 가까운 독서를 한다. 미술 관련 서적을 가장 많이 접하고 두 번째가 음식에 관한 책이다. 두 분야 책을 번갈아 읽다가 '그림에 나타난 음식'만 따로 묶어 풀어 놓은 책이 있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미술책을 보면서 그림에 간혹 등장하는, 혹은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식재료, 와인, 빵 등을 보면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붙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기왕이면 음식과 관련된 그림만 모아서 식재료와 음식의 역사를 풀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다른 한편으로는 분명히 있을 텐데 왜 내 눈에는 안 보일까 라고.

'고대부터 르네상스까지 예술에 담긴 음식 문화사'라는 부제가 달린 <미식의 역사>를 처음 본 순간 무릎을 쳤다. 이상형의 여인을 만난 느낌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 책은 그런 의미가 있다.

"P8. 식재료와 음식에 관한 시각적 정보가 문헌 등의 언어적 자료와 항상 깔끔하게 딱 들어맞지 않는다. 문학작품을 보면 연회나 잔치가 중요한 삶의 일부였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미술 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북유럽 문학에서는 바이킹의 잔치가 많이 묘사된다. 여기에서는 충성과 배신이 공존한다. 넘쳐나는 술에 취하고 호화로운 접대에 환호하던 자리가 피로 물들면서 대혼란이 벌어지는 장관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이런 악명 높은 바이킹 잔치를 그린 그림은 오늘날 찾아볼 수 없다."

2만 년 전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소 그림이 숭배의 대상이었는지 식량을 구하기 위한 기원의 의미였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BC 2000년경 지어진 길가메시 서사시에 "그리고 그는 더는 배고프지 않을 때까지 / 빵을 먹었다! / 그리고 맥주를 마셨다. / 일곱 병이나!"라는 기록이 있다. 이보다 400년 전인 기원전 2400년 고대 이집트 5대 왕조 무덤에는 빵과 맥주를 만들기 위해 곡물을 가는 여인 조각이 만들어졌다. 벽에는 빵 만드는 장면이 과정별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는 맥주 대신 포도주가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포도주를 크라테르라 부르는 도자기 그릇에 마셨다. 그리스 신들의 주연이 아닌 실제 그리스인들의 이야기다. 현대까지 남아 있는 로마 별장의 벽화, 특히 폼페이 유적들은 당시 사람들의 비극과 달리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그림은 식생활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선사시대나 고대보다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일 것이고, 그림이 기록과 소통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라는 증거다. 중세의 예술을 생각하면 성화(ICON)가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는데 왕실과 귀족, 수도승과 일반 시민들의 식생활 모습도 살펴볼 수 있었다.

"P222. 베네딕트가 자신의 <규칙서>에서 추천한 식단은 하루 두 끼를 먹는 것이다. 두 번의 요리는 각기 1파운드의 빵을 때로는 각자 먹거나 때로는 다른 수도사와 나눠 먹고, 포도주를 250밀리리터 조금 넘게 마시는 것이었다."

후기 르네상스의 현대적 식사를 대표하는 칼리아리 파올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 잔치'는 이 책의 대미다. 프랑스 낭트미술관에 있는 이 작품은 당시 귀족 연회의 왁자지껄함과 부산스러움,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기쁨이 온전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180여 개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음식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 읽는 내내 흐뭇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사라 일반적인 독자가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다. 그런데 미술과 음식은 책으로도 접하기에 충분히 매력 있는 주제다.

408쪽, 푸른지식, 2만 5000원.

/이정수(블로그 '흙장난의 책 이야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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