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영화제작소 흔적 찾기]창원 토박이 이학진 씨 구술
영화제작소 창원서 서울 이전 후 '건물 관리'제보
"신기한 물건 많아…지하 1층~지상 2층, 망루서 경비"
외삼촌 제작소 근무 "한국인 노동조건 나쁘지 않아"

옛 창원 상남면 용지리에 자리했던 '미국공보원(USIS) 상남영화제작소'. 경남지역 영화사를 언급하려면 꼭 이곳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만큼 한국 영화제작 환경 등에 끼친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5일 이성철 창원대 사회학과 교수, 박영주 경남대 박물관 비상임연구원, 마을 토박이 문종대(82) 씨 등이 '집단지성'으로 미 공보원 상남영화제작소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큰 퍼즐 조각 하나를 찾았을 뿐입니다. 남은 조각이 흩어져 있습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인물과 소중한 자료는 지역민 관심이 없다면 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지역 전문가와 본보가 모여 미 공보원 상남영화제작소 흔적을 찾는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지난 1일 오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이날 본보 '미국공보원 상남영화제작소 위치 밝혀졌다' 기사를 읽었다는 이학진(72) 씨였다. 그는 기사를 읽고 기억을 더듬다 보관하던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잠시 후 이 씨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빛바랜 사진을 휴대전화로 찍은 것이었다. 사진 속에는 허리에 양손을 올린 해군 두 명이 등장했다. 배경에는 특징 없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이곳 입구에 적힌 영어 문구에 눈이 갔다. 'USIS-MOTION PICTURE PRODUTION CENTER', 미 공보원 상남영화제작소 건물이었다.

지난 9일 창원 중앙평생교육센터 도움을 받아 이곳에서 이 씨와 만났다. 이성철 교수와 박영주 연구원이 함께했다.

▲ 이학진 씨가 당시 제작소에서 근무하던 외삼촌 이창수 씨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박영주 씨

이 씨는 가음정동 토박이라고 했다. 이 씨는 지난 1963년 해군에 입대, 진해 해군통제부 통신참모부실에서 복무했다. 이 씨가 미 공보원 상남영화제작소 앞에서 사진을 찍게 된 사연은 이렇다. 1967년 영화제작소가 창원을 떠나 서울로 가면서 해군이 건물을 관리하게 됐다. 경비를 설 사람이 필요한데, 이 씨와 후임인 서모 씨 총 두 명이 파견됐다.

이성철 교수가 쓴 책 <경남지역 영화사-마산의 강호 감독과 창원의 리버티늬우스>에 따르면, 미 공보원 영화과 직원 김원식 씨는 이 건물을 일본해군통신소로 기억했다. 제작소 초대 소장 윌리엄 리지웨이는 영화제작 시설로 쓰기 적합한 빈 건물을 발견하고 한국 해군으로부터 무상 임차한다.

이 씨는 일본이 이곳에 통신소를 둔 까닭을 "동남아시아까지 전해질 정도로 송수신이 잘되는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씨가 경비 근무를 설 때는 이미 제작소가 서울로 간 상황. 중요한 기기 등은 서울로 옮겨진 때였지만, 당시 한국인 시선으로는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고 한다.

이 씨는 "당시 구하기 어려운 40W 형광등을 제작소에서 발견해 집에 설치했다"고 했다. 다른 주민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제작소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과 망루로 구성돼 있었다. 망루에는 대형 탐조등이 있었고, 주로 망루에서 경비를 섰다. 정문 출입문을 여는 단추도 망루에 있었다. 제작소 터는 사방을 차단물로 막아놓아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이 교수에 따르면, 제작소 2대 소장 로린 리더는 사냥을 좋아했다. 그 일상 모습을 찍은 다큐 <로린 리더의 상남영화제작소와 직원들>에도 오리 사냥하러 다니는 모습이 담겨 있다.

1967년 미국공보원 상남영화제작소가 창원을 떠난 이후 해군이 건물 경비를 서던 때 모습. 사진 속 인물 중 오른쪽이 이학진 씨며 뒷건물이 상남영화제작소다. /이학진 씨

이 때문인지 이 씨는 당시 제작소에서 근무하던 외삼촌 이창수(92) 씨가 오리를 많이 받아왔다고 기억했다.

게다가 당시 제작소에 근무하던 한국인 직원은 노동 조건이 나쁘지 않은 듯했다. 이 씨는 당시 직원 삶을 "상당히 '칼라'하게 살았다"고 표현했다. 추측건대, 큰 의식주 고민은 하지 않은 듯했다.

이 밖에 이 씨는 <하녀>로 잘 알려진 김기영 감독 영화 <주검의 상자>와 관련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 영화는 당시 창원에서 촬영했다. 이 씨는 <주검의 상자> 촬영팀 숙소가 외할머니 집이었다고 전했다. 이 씨 외할머니는 상남동 장터거리에서 국밥집을 했는데, 촬영팀이 이곳에서 밥을 먹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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