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부산 민심이 대선판 흔든다?
미미한 지방역할 인정하고 대해야

"경남·부산 민심이 대선판 흔든다"(경남도민일보) 기사를 읽었다. 정치의식이나 일상 정서가 경남과 꼭 같지도 않은 부산이 선거 때는 한 고리로 묶이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식의 보도는 객관적 판단이 아니라 경남에 사는 기자의 소망이나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경남 민심이 대선을 좌지우지했으면 좋겠다는 욕망.

지난 총선과 탄핵 정국을 거치며 경남과 부산에서 여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가 균열을 일으킨 건 사실이다. 여당을 압도적으로 좋아하지는 않게 된 이 지역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대선 판도에 미치는 입김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의 기사 제목에서 경남·부산 대신에 다른 지역 이름을 넣어도 마찬가지다. 여당의 핵심 근거지이자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슬슬 여당 지지세를 회복하고 있는 대구·경북은 당연히 이번에도 대선판을 흔들 것이다. 여당이 탄핵 반대를 노골적으로 떠들기 시작한 것도 TK 여론을 살폈기 때문이다. 여야 어느 쪽도 압도적으로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대선의 풍향계 구실을 해왔다는 충청권도 마찬가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착각했고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기대고 있는 '충청대망론'이 경남·부산 민심보다 약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야당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호남은 어떤가. 특히 광주는 제1야당 대통령 후보를 정하는 곳이나 다름없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노무현은 그때 국민경선이 열렸던 광주가 만들어준 것이다. 이렇게 따지니 대한민국 대부분 지역은 대선 판도를 움켜쥐고 있는 곳이 된다.

특히 선거에 미치는 수도권과 비교한다면 경남·부산, TK, 충청, 호남을 모조리 합해도 게임이 되지 않는다. 수도권을 빼놓고 어떻게 선거 추이를 말할 수 있으며, 수도권이 있는 한 '일개' 지방이 대선판을 흔든다고 말할 수 있나. 대한민국 선거 판도의 결정권은 인구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 넘어간 지 오래이며 지방 인구가 계속 빠지는 한 그 추세는 더할 것이다. 특히 서울은 역대 시장을 유력 후보로 배출하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민선 단체장을 선출하기 시작한 이후 서울 시장 중 대선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지방자치 시대의 개막은 되레 서울특별시 단체장으로 숨만 쉬고 있어도 대통령 후보로 직행하게 해주었다. 특별시 단체장의 위상이 커질수록 지방 광역 단체장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홍준표 도지사가 재임 내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유별나게 튀는 행동을 했던 까닭도 여간해서는 중앙 언론을 탈 일이 없는 '별볼일 없는' 경남단체장의 처지를 절감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가 특별시장이었다면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그렇게 눈물겨운 인정투쟁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선거에서 지방의 역할이 갈수록 미미해지고 있음은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이다. 어쩌다 부는 건들바람으로는 태풍을 이길 수 없다. 대선 판도에서 경남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솔직히 별로 없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유권자들이 택하는 자가 결국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자는 말은 아니다. 서울 독점에 맞서는 지방 분권의 강화는 선거를 통해서밖에 얻을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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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사는 이들의 목소리가 유일하게 무시당하지 않을 때는 대선이다. 지방자치에 대한 소신이 강하고 지역균등 발전을 굳게 약속하고 그럴 만한 실천 역량이 있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내가 사는 지방을 살리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키울 수 있는 길이다. 물론 어느 후보가 진지하게 마음을 쓸지 회의적이긴 하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대선에 기대를 걸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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