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뜸과 갈라진 후 아래뜸 마을 수난사
다시 타오른 횃불 꺼지지 않게 살펴야

흰머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호랑골은 원래 한 마을이었다. 산기슭 쪽으로 밭곡식과 사냥으로 먹고사는 위뜸과 작은 개울을 두고 앞들 쪽으로 논농사와 고기잡이를 하는 아래뜸이 서로 오순도순 너나들이하며 살았다. 이웃으로는 흰머리산 너머 곰실마을과 큰물 건너 여우골이 있었다. 그러나 이웃 마을인 여우골과는 옛날 선대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임진년 물꼬 싸움에서는 호랑골 사람들이 상하기도 했다. 바깥바람이 호랑골 앞들에 휘몰아치던 시절, 먼저 대처로 나가 도시물을 먹고 들어온 여우골 이장이 찾아와 거센 바람으로 집안에 웅크리고 있던 호랑골 이장에게 자기들이 앞들 둘레에 바람막이숲을 조성해줄 테니 호랑골 개울물을 마음대로 쓰게 해달라고 했다. 간사하고 교활한 수법이나 어거지 우격다짐으로 또는 호랑골 놈팡이들을 꼬드겨 개울물을 빼앗더니 이어 흰머리산 나무 벌채권을 가져갔다. 야금야금 해먹다 온 마을을 여우골 소작지로 만들어 호랑골 놈팡이를 마름 세워 들과 산을 긁어가니 마을 사람 원성이 하늘에 닿았더라.

그러자 호랑골 기름진 앞들과 흰머리산에 은근히 눈독 들이다 선수를 빼앗긴 노소면과 양기면 면장이 여우골의 독식에 배알이 틀렸다. 마침 동네 간에 시비가 붙어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양기면에서 여우골 한 집을 불 질러 일가족을 몰살시켜 버렸다. 이에 기가 꺾인 여우골 사람들이 물러갔다. 양기면과 노소면에서 서로 여우골 물리친 공을 주장하며 자기 면으로 호랑골 편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달은 여기서 났다. 두 면이 팽팽히 맞서자 이웃 마을들 중재로 위뜸은 노소면이, 아래뜸은 양기면에서 출장소를 두고 각기 이장을 뽑아 앉혔다.

타지를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온 백두발 영감은 마을이 쪼개지는 것을 반대해 개울 건너 위뜸을 다녀온 구 선생까지 두 번 다시 입을 열지 못하게 하면서 반쪽짜리 이장 자리를 공고히 다졌다. 종신 이장이 되고자 여우골 마름 노릇을 하던 놈팡이들을 불렀다. 이들은 백두발 영감을 위해 마을에서 내려오던 관습과 전통을 어지럽히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핍박했다. 이에 마을 청년들이 참지 못하고 떨쳐 일어나니 두 마을로 쪼개진 이후 처음 열린 '횃불 길놀이'였다. 어두운 욕심에 갇혀 헤매는 혼군에게 횃불을 들어 바른 길을 찾아주려는 마을 사람들의 지극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 횃불이 자신의 앞길만 밝혀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또 다른 욕심쟁이들이 서로 횃불을 뺏어 들려고 다투는 통에 엉뚱한 자가 덥석 이장 자리를 집어삼킨다. 여우골 건달패 똘마니 출신으로 마을 경방단에 있던 군씨다. 경방단을 동원해 권력을 찬탈한 군씨는 유신이라는 신발을 갈아 신고 모든 횃불을 빼앗아 짓밟아버린다. 18년이나 철권통치를 하던 군 씨는 횃불이 다시 타오름을 느낀 심복에게 맞아 주저앉았다. 그러나 또 어영부영하는 사이 이듬해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타오르는 횃불을 직접 바로 난도질한 오공이란 살인귀가 잽싸게 권력을 낚아챈다. 오공이 물러날 무렵 이장을 직접 뽑아야겠다는 횃불 길놀이가 또다시 타올랐으나 제 욕심으로 짝짜꿍이 된 남해 돌김 서해 파래김이 횃불에 물을 끼얹어 버린다.

박보근 노동자.jpg

이후 한동안 타오르지 못하던 횃불 길놀이가 호랑골이 생긴 이래로 가장 뜨겁고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군씨의 딸로 역대 최악의 어리석고 무능한 이장이 근본도 모르는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마을 일을 사사로이 처리하여 아수라장을 만들자 횃불이 올랐다. 그런데 또 걱정이다. 길을 비추고 있는 횃불부터 꺼지지 않게 불씨를 소중히 보살펴야할 이들이 저를 위해 쳐든 불인 양 서로 길앞에 나서 물고 뜯고 싸운다. 너희들 다투는 그림자에 가려 길이 다시 보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한 발 물러서서 길을 틔우고 불씨를 북돋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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