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인간의 길'아는 할머니
떳떳해야 할 대통령 모습과 비교돼

창녕에 사는 한 시골 할머니가 지난 설을 맞아 손바닥만한 집앞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내다 팔아 모은 돈 30만 원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며 군청에 기부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겨우 그거냐고 말해서는 안 된다. 할머니의 형편에 비추어 그건 큰돈이다. 방이라도 데워 따듯하게 겨울 추위를 날 수 있는 비용으로는 부족하지 않지만 그보다는 이웃과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더 귀하게 여긴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의 따스함을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가난해도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나라 안팎이 시끄럽기 짝이 없고 편안한 날이 없는 터라 감동은 더욱 컸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정국은 국민적 분노와 함께 상실감과 패배감을 만연시켰다. 수개월째, 대통령 측의 방탄력은 진화를 거듭하며 지연전략에 매진함으로써 세상을 어지럼증으로 이끌어간다. 그야말로 혼돈의 세월이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피해의 가장자리로 내몰리는 계층은 힘없고 돈 없는 서민들일 것이다. 정권은 병들었고 정치는 대권야욕에 빠져 그들을 보듬을 조그만 여유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한 시골 할머니가 펴보인 순수한 인간애는 그러한 무지를 깨우치는 소중한 메시지다. 아직 사회공동체는 희망이 있고 구성원인 시민 대다수는 건강성을 간직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간절히 희구한다. 지금의 무질서와 대행체제를 하루빨리 종식해 정상적인 국가 기능이 회복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 하나는 3월 초 탄핵일정을 끝맺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대통령 측이 지연작전을 거두고 법리추구에 충실해진다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헌재의 결단이 더 중요하다. 공정성을 잃지 않되 가능한 한 기간을 단축함으로써 실종된 국가공신력을 되찾게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여러 장애요인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지뢰가 매설돼 있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이 조기수습을 기다리는 사정을 고려한다면 선택할 돌파수단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철칙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모델로 대통령을 능가할 대상은 없다. 특검 조사도 받고 헌재에 떳떳이 출석하는 것으로 그 진가를 공유할 수 있다. 일일이 물어볼 수는 없으나 민초들은 정정당당하고도 정의로운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민간인 최순실은 개인 이익을 위해 구차하게 변명을 일삼아도 이해되지만 대통령은 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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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적어도 역사적 관점에서 진실을 말해야 하는 존재다. 아랫사람들이 거짓말을 해도 대통령은 참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불경기에 30만 원을 흔쾌히 이웃에 희사한 연로한 시골 할머니도 아마 그 정도 자존심은, 대통령이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인간적 자산이라고 에둘러 말할 것 같다. 그걸 확인할 기회가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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