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우선구출 '버큰헤드 정신'
위기 상황서 리더십 발휘 사례
침몰하는 사회·시대정신 주목

1852년 2월 26일 새벽, 암초에 부딪힌 버큰헤드((Birken Head)호는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었다.

이때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구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그에 따라 움직였다.

배가 침몰하기 직전, 살몬드 함장은 병사들에게 뛰어들어 구명정으로 가라고 했지만 세튼 대령은 여성과 어린이를 태운 구명정이 전복될 수 있다고 가지 말라고 간청한다.

탑승인원 638명 가운데 445명이 숨질 정도의 초대형 선박사고에서 여성과 어린이 20명 전원은 목숨을 구했다.

'버큰헤드 정신'이란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드호 침몰 당시 부녀자들을 구조하고 나서 물에 잠겨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말이다.

이 정신은 타이태닉호 침몰 사건 등 대형 해난 사고에서 수많은 인명을 살려내는 하나의 행동 강령으로 자리매김했다.

<버큰헤드호 침몰사건> A C 애디슨, W H 매슈스 공저, 배충효 옮김

1902년 말에 출간된 <버큰헤드호 이야기>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의 내용을 통합하고 수없이 수정해 올 1월에 나온 개정판 <버큰헤드호 침몰사건>(A C 애디슨, W H 매슈스 공저, 배충효 옮김)은 무려 165년 전 일어난 사건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어쩔 수 없이 2014년 4월 16일, 그날을 떠올린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승객 304명이 사망, 실종됐다. 선장은 침몰하는 배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와 목숨을 구했다. 대부분 학생이었던 승객들은 "안전한 선내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따랐고 목숨을 잃었다.

'버큰헤드 정신'이 전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어린아이와 여성을 가장 먼저 구조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선장을 비롯한 모든 선원은 일반 승객의 대피를 끝까지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160년 전에도 가능했던 이 정신이 2014년 대한민국에선 사라졌다.

재난 상황을 지휘해야 할 국가는 없었다.

그 이후는 또 어떠했나.

정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묻는 사람들을 희롱하고 비하했다.

사고 이후 세 번째 봄이 찾아오건만 여전히 책임지는 사람도, 사과하는 사람도 없다.

경남지역 학부모들이 지난 2015년 창원 의창구 소계동 사거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남 방문 일정에 맞춰 무상급식 중단 관련 집회를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최악의 재난 상황에서 버큰헤드호 장교들은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그들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워 주었으며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일반 사병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책 말미 7쪽이 넘는 지면에 사망자와 생존자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다. 너무나 안타깝게 우리에게도 기억해야 할 수백 명의 희생자가 있다.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구하고 물속으로 뛰어든 영국 해군의 실화를 다룬 이 책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리더십 부재의 시대, 대한민국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312쪽. 북랩. 1만 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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