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사회·경제적 결핍 보상심리 악용
생활고·금융지식 부족, 무한 신뢰 '농문화'한몫
"대출해 투자·주변 권유"

농아인이 같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벌인 사기 범죄. 총피해액 280억 원에 피해자만 5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사기 범죄가 일어난 배경에 농아인 고유 문화, 일명 '농문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 등 농아인 60여 명은 9일 오전 창원중부경찰서 앞에서 투자 사기 조직 '행복팀' 엄벌을 촉구하며 집회를 했다.

이날 참석한 피해자 ㄱ(40) 씨는 4년 전 친구를 통해 '행복팀'을 알게 됐고 자신 또한 대출을 받아 7000만 원 가량 투자를 했다고 했다. 대출금 이자까지 하면 피해는 더 커진다. ㄱ 씨는 "대출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금방 갚게 해주겠다는 말을 믿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해 탈퇴 전까지 팀원 다섯을 둔 팀장이었다. ㄱ 씨는 이날 다른 장애인에게도 투자를 유도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청각장애인들이 9일 창원중부경찰서 앞에서 투자사기를 벌인 조직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그는 농아인을 누구보다 믿는다고 했다. 수화로 대화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문화'까지 잘 알고 있는 이라면 믿음은 배가된다.

ㄱ 씨는 "투자에 대해 설명해 준 여성이 수화를 잘하는 데다 농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어 그가 하는 말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믿을 수 있었다. 오죽하면 취하는 느낌까지 들었다"면서 "화목하고 끈끈한 분위기 때문에 처음엔 사기를 당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고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장애계 관계자는 이 같은 대규모 사기 범죄 배경으로 '농문화'를 꼽았다. 농아인은 대화가 통하는 농아인끼리 특유의 문화를 형성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비장애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절대적인 믿음이 싹튼다고 했다.

그는 "농아인은 언어·문화뿐 아니라 경제·사회적으로도 고립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사건은 농문화가 낳은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을 맡은 김대규 수사과장 말도 맥락을 같이한다.

김 수사과장은 "이번 사건 피해자들이 취직을 못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데다 금융 지식이 부족했다"며 "여기에 '그들만의 특수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옥순 창원천광학교 교장은 이 사건을 농아인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넓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장은 "농아인은 시각적 정보에 의존을 많이 하기 때문에 옷을 잘 입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선악이나 가치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며 "경제적으로 열악하다면 돈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부가 농아인 고용을 늘리고 금융기관은 대출에 보다 주의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며 "이 사건을 개인 잘못으로 보기보다 사회적 이해와 교류가 부족해 빚어진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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