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담배 심부름·슬쩍한 선물세트
매번 욕듣고 오늘도 골목에 선 '빈곤'

폐지를 줍는 할머니 한 분이 놀이터 앞 가게에서 담배를 산다는데 담배를 팔지 않는다. 할머니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학생들 담배 심부름을 하면 벌 받는다고 가게주인한테 야단을 맞는다. 한두 번이 아니라고 야단을 맞으면서도 할머니는 한 번만, 한 번만 애원을 한다.

그렇게 쫓겨난 할머니가 멀리 가지 못한다. 할머니 지갑에 1000원짜리 몇 장과 동전 몇 개가 있지만 먹을거리를 사기엔 늘 부족해 보인다. 온종일 손수레를 끌어도 1만 원을 벌기 어렵다. 리어카도 없는 할머니는 온종일 작은 손수레를 채워봐도 1000원이 되지 않을 것 같다.

해 질 녘 사람들이 퇴근하는 길에 시장을 보는 시간쯤인 것 같다. 할머니의 손수레는 처음부터 폐지를 줍기 위한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주위가 어두워진 상가에서 할머니가 설 선물세트를 구경한다. 얼마 줍지 못한 폐지 위로 한참을 구경하던 할머니가 선물세트 하나를 올려놓는다. 급하게 주변의 폐지를 담아서 물러나려는데 가게 안에서 주인이 나온다. 돌아서서 몇 걸음이나 갔을까 가게주인이 부른다. 할머니는 자기가 한참 지나온 길이라고 생각하는지 뒤돌아보지 않는다. 구부정한 몸짓으로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가게주인이 한달음에 달려와 소매를 붙든다.

"할머니 손수레 좀 봐요."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얼마 되지 않는 폐지들이 들춰지고 묵직한 선물세트 하나가 가게주인 손에 들린다.

대번에 단단한 말이 들려온다.

"할머니 이리 와봐."

"잘못했어, 한 번만, 한 번만!"

애원하고 사정을 해보지만 구부정한 몸뚱어리가 가게주인의 팔에 끌려간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원하면서 땅바닥에 앉아보려 하지만 소매를 잡혀서 주저앉지도 못한다. 겁이 나서 따라가지도 못하고 끌려간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벗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다. 웬만하면 봐주겠는데 한두 번이 아니라고 주인이 호통친다. 처음이라는 말 대신 '한 번만, 한 번만' 애원하면서 두 손을 빈다. 소매가 붙잡혀서 두 손을 비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버둥거릴수록 소매는 더 단단히 잡힌다.

평소보다 늦게 돌아온 할머니에게 아픈 할아버지가 묻는다. 별일 없다며 저녁을 차린다. 평소보다 늦은 저녁에 햄이 반찬으로 차려진다.

"무슨 돈이 있어서 햄을 샀어?"

"시장통에 가게주인이 설이라고…."

"고마운 사람이네. 인사라도 해야겠네!"

"……."

그렇게 할머니의 하루가 지나간다. 아침이 되면 할머니의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남들 보기에 좀 이상하더라도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할머니에게 어제는 그저 어제의 일이었던 거고, 오늘은 오늘의 밥을 벌어야 한다. 놀이터를 지나칠 때면 학생들이 오늘도 담배심부름을 부탁할지도 모른다. 시장통 가게를 지나칠 때면 곱지 않은 눈으로 볼 테지만 변함없이 지나친다. 많은 행인이 지나칠 테고 느리고 느린 할머니의 손을 가게주인이 지켜볼 거다.

박명균.jpg

살아가는 이유가 다들 있겠지만 간혹 이유없이 살아가기도 한다. 먹음직스러운 사과 하나, 라면 한 봉지, 햄이 누군가에겐 살아가는 목적이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큼지막한 부사를 쪼개서 아픈 할아버지에게 건네는 것이 큰 바람이 되기도 한다. 한때 속이 꽉 찬 무언가였던 할머니는 이제 폐지가 되어 골목에 구부정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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