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간의 제 살 뜯기" 가슴아파
버스와 택시 서로 "최대 방해꾼"

내 생각이지만 택시의 가장 불편한 존재이자 앙숙은 시내버스다. 둘 다 시민의 발이지만, 경제학적 용어를 빌린다면 대체재여서 상대가 없으면 수익은 좋아지는 구조다. 예를 들어 어느 한쪽이 파업에 들어가면 다른 쪽은 수익이 늘어나게 되는데, 소위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이 되는 셈이다. 그렇지만 내 이익을 위해 남의 불행을 바랄 수는 없고, 실제로 그런 상황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시민의 엄청난 불편을 가져오기 때문에 일어나서도 안 된다. 현실에서 택시나 버스기사는 자신들의 수익 때문에 서로 앙숙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운행에 최대의 방해꾼이 바로 상대라고 생각한다.

우선 택시기사 처지에서는 사람이 붐비는 버스정류장 부근이 손님을 태울 확률이 비교적 높아 불법이지만 줄을 서서 정차한다. 알다시피 시내버스정류장은 차량과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라 항상 사고의 위험이 따른다. 그런데다 택시까지 불법정차를 하고 있으면, 그 위험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승객이 내리고 타는 행위가 반복되고, 차량의 정차와 출발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버스정류장은 택시운전을 하면서도 가장 신경 쓰이는 장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내버스 기사들도 많은 불평을 하고 실제로 민원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한 푼이 급한 택시기사는 단속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불법 정차를 계속한다. 내가 본 버스정류장 교통사고만 해도 여러 번인데, 문제는 해결방법이 마땅치가 않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해결방법으로 버스승객이 가장 많은 몇 군데라도 시범적으로 버스와 택시정류장을 병행설치해서 운영해봤으면 한다. 물론 지금도 병행설치된 정류장이 제법 있지만 정류장 간 이격거리, 넓이, 설치대수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 보다 깊이 있는 개선작업이 절실하다.

또 하나 앙숙의 원인은 각각 운행을 하면서 서로가 장애물로 여긴다는 점이다. 시내버스는 정류장 간 간격이 좁기 때문에 운행차로가 대부분 맨 바깥이다. 택시 또한 승객의 탑승 유무에 상관없이 바깥차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빈 차로 달리던 택시가 손을 든 승객 때문에 갑자기 정차하면 배차시간에 쫓기는 시내버스가 위협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실제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대로 앞서가던 시내버스가 정류장에서 제대로 정차하지 않고 진행노선을 어정쩡하게 걸쳐서 정차하는 바람에 택시가 버스출발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자주 직면한다. 이때는 또 택시기사가 열받게 되는 순간이다.

마지막으로는 신호등에서 자주 발생하는 갈등 상황이다. 직진 상황에서 맨 바깥차로가 우회로일 때는 우회전하는 차량을 위해 정차해서는 안 된다. 빈 택시일 경우 불법인줄 알면서도 간혹 우회전차선에 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는 다른 빈 택시가 앞서 가는 것을 막으려고 종종 써먹는 수법이다.이런 상황에서 만약 택시 뒤에 우회전하는 시내버스가 있었다면 난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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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택시기사 시절, 그렇게 무섭게 내달리던 택시나 시내버스기사가 내려서 얘기를 해 보면 다들 평범한 가장이고 순박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내심 놀란 적이 있다. 배차시간에 쫓기는 버스와 사납금과 전쟁에 빠져있는 택시 간의 신경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소위 갑을 간의 불평등·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라 을 간의 제 살 뜯기 전쟁이라는 점에서 참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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