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음 큰 울림, 저금통 끼끼의 모험]
첫 번째 이야기, 경남도민일보에 찾아온 선물
2년간 '옛 100원짜리'모은 택시기사
세월호 유가족에게 전달하기로 결심
"묵묵히 응원하는 이들 여전히 많아"
팽목항으로 향할 따뜻한 나눔의 시작

지난달 31일 오후 한 사내가 경남도민일보를 찾았습니다. 이웃돕기 성금을 맡기러 온 것이었습니다. 신문사로 직접 들어온 성금은 보통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맡깁니다. 그런데 이번 성금은 좀 특별했습니다. 뭔가 소소한 감동이 있는 저금통이었습니다.

그날 4층 편집국 제 자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손님이 오셨는데, 한 번 와서 이야기를 좀 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총무부장의 전갈이었습니다. 6층 경영국에 올라가니 커다란 사내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앉은 테이블 한편에는 역시나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예쁜 분홍색 토끼 인형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저금통이었습니다.

사내는 창원에서 택시 기사를 하는 고동성(44)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선한 눈동자였고, 얌전한 말투였습니다.

고동성 씨와 저금통 '끼끼'.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지난 2015년 1월부터 창원에서 택시 기사 일을 하고 있어요. 법인 택시예요. 요즘은 손님이 잘 없어서 돈 벌기가 쉽지는 않아요. 격일제로 일하는데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어요."

고 씨는 그러면서 저금통을 들고 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택시를 하면 손님한테 동전도 받고 하잖아요. 택시 기사를 막 시작할 때, 하루는 보니까 옛날 동전 100원짜리를 받았는데, 1973년 것이더라고요. 제가 73년생이에요. 100원짜리 동전으로 치면 굉장히 오래된 거잖아요. 아직도 100원 가치를 그대로 지니고 그 노릇을 하면서 유통되고 있으니까 반갑더라고요. 요새는 옛날 동전 보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기념으로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옛날 동전만 따로 모으기 시작했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잔돈을 받을 때마다 옛날 동전만 따로 모았어요. 같은 택시 기사인 저희 형한테 이야기를 하니 형도 따로 모아서 주더라고요. 처음에는 조그만 저금통에다 하다가 지금 이 저금통으로 바꿨어요. 더 크면 제가 들고 다니기가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제가 택시기사를 시작한 게 2015년 1월이니까 지금까지 만 2년 동안 모은 거예요. 딱 어제(30일)까지 모았어요. 이제는 이것도 꽉 차서 더 안 들어가더라고요. 겨우 밀어서 넣었습니다."

옛 동전을 모은 사연을 이야기하는 동성 씨.

그는 애써 모은 동전들이니 좋은 일에 쓰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기부를 하자고 마음을 먹은 거지요.

"어차피 제가 쓰려고 모은 것도 아니고, 낡은 100원짜리 동전이지만 어쨌든 간에 2년 동안 신경을 써서 모은 돈인데 기왕이면 그래도 가치 있는 일에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걸 어디다 갖다줄까,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고민을 했거든요. 그래서 선택한 게 경남도민일보예요. 평소에 페이스북으로 뉴스도 자주 접하고, 경남도민일보에서 내는 책도 사서 보기도 하고 그럽니다. 언론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워낙 당연하지 못한 세상에 살다 보니까 그저 당연한 일을 하는 것만 해도 고마운 마음이 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돈 자체는 많지 않지만 경남도민일보라면 제가 믿고 맡겨도 바람직한데 알아서 잘 써 주실 것 같았어요. 또 이런 식으로도 경남도민일보를 응원하고 싶기도 하고요."

이야기를 하는 내내 고 씨는 진땀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저금통을 들고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다독이며 용기를 냈을지 짐작이 가더군요.

1973년에 발행한 동전.

"이런 일 해보지 않아서 되게 어색하네요. 성격이 어디 나서고 하지는 못하고요, 비번일 때는 촛불 들고 시국대회에 참석하기도 하는데, 뒤에서 조용히 있다가 가고 그래요. 그때 현장에서 모금함이 돌면 돈을 내긴 했는데, 이렇게 성금 낸다고 어디를 찾아온 건 처음이에요. 전부 100원짜리라서 저금통이 무겁기만 하고 액수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별거 아닌데 와서 괜히 생색 낸 거 같아서 망설여지네요."

저는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듣고 보니 참 소중한 마음이 담긴 것이라 정말로 좋은 곳에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혹시 이 저금통을 기부하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고 씨는 주저 없이 세월호 유가족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처음에는 팽목항이나 서울에 가서 세월호 유가족에게 드릴까 했는데, 거리도 멀고요. 지금 택시 기사로 사는 게 빠듯해서 경비도 부담돼서 어렵겠더라고요. 그분들도 보면 이미 1차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으신 분들인데요. 몰지각한 이들 때문에 2, 3차로 상처를 받으시고 하잖아요. 그게 안타깝고요, 그런 뉴스가 나오면 가슴이 아프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처럼 묵묵하게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끼끼의 목적지팽목항.

저는 고 씨를 대신해 팽목항으로 가서 저금통을 전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달하기보다는 무언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의 작은 마음이 얼마나 큰 울림이 되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일단 예쁜 토끼 저금통에 '끼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출판미디어국 서정인 기자의 작명입니다. 그리고 끼끼를 데리고 모험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다면 단원고 아이들이 찾아갔을 제주도 수학여행 코스도 다녀오고, 서울과 안산에서 세월호 유가족도 만나고, 마지막으로 팽목항을 찾을 생각입니다. 하여 제주도에서 시작해 서울과 안산을 거쳐 팽목항에서 끝나는 여정입니다. 저금통 끼끼의 모험 이야기는 오는 4월 16일 전까지 부정기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동성 씨 마음과 닮은 '세월호 기억의 벽'.

참고로 고 씨가 모은 동전은 정확하게 2015년 1월 14일부터 2017년 1월 30일까지 모은 1970년대 전체와 1982년까지의 100원짜리 주화입니다. 100원짜리 동전은 1970년 11월 30일에 처음 발행됩니다. 그리고 1983년 1월 15일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되어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1976년에는 발행되지 않았고요. 1970년도와 1981년도 것은 발행 수가 적어 수집가들 사이에 액면가의 수십 배로 거래가 된다고 합니다. 구리 75%, 니켈 25%고요, 앞면은 이순신 장군 초상, 뒷면은 액면가가 부조로 조각됐습니다.

지름 24㎜, 무게 5.42g의 이 작은 동전이 얼마큼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고동성 씨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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