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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기지 켜켜이 감싸 안은 통영의 산

[경남의 산] (4) 통영
통제영 품은 '주산' 여황산 이순신 장군 모신 충렬사도 보듬어
그 아래 뻗은 동피랑·서피랑 유명
통영 하면 떠오르는 '객산' 미륵산
기암절벽·수풀·계곡 등 산세 수려
풍수 관점으로 예술적 기운 가득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7년 02월 03일 금요일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다! 섬 여행가이자 통영을 사랑하는 강제윤 시인의 말이다. 통영은 조선 수군의 본부인 통제영(統制營)에서 나온 이름이다. 우두머리는 삼도수군통제사였다. 종2품 관직으로 무인으로서는 최고 벼슬이다. 당시 관찰사(오늘날 도지사)와 같은 관품이었다. 경상도 고성 땅에 속했지만 '고을 원님보다 높은 통제사 나리'가 다스리던 곳. 경상·전라·충청도(삼도)를 포함한 전국에서 군인과 기술자들이 모여 살았던 곳. 통영은 경상도의 한 고을이 되기에는 너무 역동적이었다.

고을 자체가 군사기지였으므로 조선시대에도 따로 진산을 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병관을 중심에 두고 봤을 때 통제영을 감싸 안은 산세는 명확하다. 통영 하면 대개 미륵산(461m)을 떠올리나, 풍수적으로 이 산은 객산(客山)이다. 주산(主山)은 세병관 뒤편, 현재 북포루가 서 있는 여황산(174m)이 되겠다.

◇옛 지도로 본 통영 = 조선시대 지도 중에 통영, 즉 통제영 지도가 따로 없는 것이 많다. 대부분은 고성 지도 하단에다 통영을 그려 놓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엄연히 고성현에 속한 까닭이다.

옛 통영 지도는 통제영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해 놓아 주변 산세를 자세히 알기가 쉽지는 않다. 개중에 제법 재밌는 통제영 지도가 있는데, <1872년 지방지도>에 포함된 것이다. 이 지도는 조감도를 보는 것처럼 정밀하게 통제영과 그 주변 산세를 묘사했다. 특히 세병관을 중심으로 그 뒤편 북표루(현 북포루)와 지금 동피랑 자리인 동표루(동포루), 서피랑 자리인 서표루(서포루)가 성곽으로 연결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확실히 통제영은 여황산을 주산으로 삼고 있다.

통영 주변 산줄기를 제법 잘 그려 놓은 것은 <해동지도>의 고성현 지도다. 여황산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산줄기 우백호가 되겠는데, 오늘날 천함산(천암산·258m)이다. 여황산 동남쪽으로 뻗어 내려간 좌청룡은 오늘날 이순신공원이 있는 망일봉(148m)이다. 거북선이 줄지어 정박했을 선창과 그 앞바다를 감싼 산줄기 중 동쪽의 것은 지금의 남망산(72m)이다. 서쪽 줄기는 지금의 항남동 일대다.

<1872년 지방지도> 중 통영지도.

◇여황산과 동피랑·서피랑 = 통제영을 감싼 산줄기는 대부분 고성군과 통영시의 경계에 있는 벽방산(650m)에서 뻗어 나왔다. 벽방산에서 시작한 산맥은 천개산, 도덕산, 제석봉을 거쳐 여황산으로 이어진다. 여황산의 토박이 지명은 '안뒷산(안띠산)'. 풀이하자면 '통제영 뒷산' 정도가 되겠다.

여황산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이후에 얻은 것으로 보인다. '여황'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임금이 아끼던 호화롭게 장식한 배를 말한다. 통제영의 주산에 걸맞은 이름이다. 높지 않은 산이라 20~30분 걸음이면 정상 북포루에 가 닿는다. 등산로는 조용하고 편안하고 정갈해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 옛 영광은 사라지고 이제는 점잖고 얌전하며 차분한 느낌이 드는 산이다.

여황산에서 뻗어나간 또 하나 큰 산줄기 아래 이순신 장군을 모신 충렬사가 있다. 이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산세를 형성하고 있어 기운이 남다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충렬사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이 돈다고 한다.

통제영을 직접적으로 감싼 산은 동피랑과 서피랑이다. 각각 동쪽 벼랑, 서쪽 벼랑에서 나온 이름이다. 좁은 의미에서 이들을 좌청룡, 우백호로 보는 이들도 있다. 동피랑은 이미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다. 벽화 덕분이다. 하지만, 옛 통영의 실제 번화가는 서피랑 주변이다. 서피랑은 이제야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서피랑 정상에 있는 서포루에 오르면 세병관을 포함한 옛 통제영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피랑지기이자 통영시 문화해설사인 이장원 씨는 풍수적으로 서피랑을 거북이 머리로 보는 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 여황산은 거북이 등, 동피랑은 왼쪽 다리다. 거북이가 고개를 들고 바다를 향해 가는 형국이다. 그래서 고개에 해당하는 서피랑이 곧 흥하게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주산을 압도하는 객산, 미륵산 = 미륵산은 환경부가 선정한 국립공원 대표경관 100경에 선정될 정도로 수풀과 계곡, 기암절벽이 수려한 산이다. 산 정상 바로 아래까지 운행하는 한려수도 조망케이블이 생기면서 통영 하면 떠오르는 대표 산이 됐다. 미륵산이라는 이름은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을 둘러보고는 앞으로 미륵불이 오실 장소라고 말한 데서 비롯했다.

미륵산이 품에 안고 있는 야솟골(금평마을). 인물이 많이 나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이서후 기자

미륵산은 풍수에서 말하는 화형, 수형, 목형, 토형, 금형 산세를 고루 지니고 있다. 이런 산세가 통영을 예술적인 기운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었다고 풍수가들은 해석한다. 다만, 객산인 미륵산이 주산인 여황산을 압도하고 있어 '통영 사람은 외지로 나가야 성공한다'거나, '통영에서는 외지 사람이 더 성공한다'는 말이 나온다. 예컨대 통영 토박이인 소설가 박경리나 음악가 윤이상은 바깥으로 떠돌며 명성을 얻었다. 반대로 외지인인 화가 이중섭과 시인 백석은 통영을 다녀가며 큰 흔적을 남긴 것도 이런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미륵산은 통제영을 등지고 돌아서 있다. 반대로 바다를 바라보는 미륵산이 두 팔을 뻗어 소중하게 감싸는 곳이 인물 많기로 유명한 명당 야솟골(금평마을)이다. 한자로는 대장장이 야(冶)를 써 야소(冶所), 또는 화살 시(矢)를 써 야시(冶矢)골이라 하는데, 화살을 만드는 대장간이 있던 곳이란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미륵산 바로 앞바다에 당포진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당포해전이 벌어진 곳이다.

미륵산 정상에서 보면 산줄기가 야솟골을 품은 모양새가 뚜렷하다. 마을 서쪽에 있는 미륵산의 끝 등성이를 독뫼(獨山) 또는 산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뫼(東山)라고 하는데, 박경리 묘소가 있는 바로 그 산이다. 미륵산 정상에서 만난 문화해설사는 이 독뫼가 옛날 탈곡기로 벼를 수확할 때 탈곡기 앞에 수북이 쌓인 나락 형상이라는 풍수가의 해석을 들려줬다. 그만큼 따뜻하고 풍성한 동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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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뮤지컬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