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고독한 미식가>저자 구스미 마사유키 저
목욕탕·술집 낮 순례기 펴내, 관찰력·재치 있는 문장 눈길

토론장이었던 고대 로마 목욕탕에 '능변가'가 많았다면, 현대 대중목욕탕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주를 이룬다.

평일 낮에 목욕탕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혼자다. 누군가와 함께라도 목욕탕 안에서는 따로다. 등밀이 기계가 있어 타인 손을 빌릴 까닭도 없다.

방수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를 보면서 반신욕을 즐기는가 하면, 온탕·열탕·테마탕·히노키탕에서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이들도 있다. 어쨌든 개인의 시간이다.

이들은 왜 혼자, 그것도 낮에 목욕탕을 찾을까. 1000원권 지폐 몇 장으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일까. 영업시간 중에는 무제한 이용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겠다.

복장으로 타인을 구별 짓는 행위도 목욕탕에서만큼은 예외다. 오로지 육체미로 승패가 나뉜다. 그렇다고 승부에 전념을 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따뜻한 탕에서 몸을 녹일 때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사우나 안은 바깥에 비해 동적이다. 쪼그려 앉기, 뜀뛰기, 섀도 복싱 등 다양한 몸짓이 공간을 지배한다. 땀을 흘리면 흘릴수록 빛에 반응해 역동성이 더욱 강조된다.

한 지인은 "탕 속에 몸을 담그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애정결핍"이라고 해석했다. 이렇듯 목욕탕 또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문학적 소재가 된다.

공간에 초점을 맞출 때는 건축학적 분류도 가능하다. 오래된 목욕탕은 특유의 운치가 있고, 축적된 물때의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목욕탕 내부에서 맞닥뜨리는, 맞춤법을 무시한 안내문은 언어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타자에게 뜻이 전달되니까.

일본 만화 거장 다니구치 지로와 만화 <고독한 미식가>를 공동 작업한 만화가 구스미 마사유키가 이번엔 목욕탕을 주제로 글을 썼다. 자신이 방문한 목욕탕 단상을 소개하는데, 시간대가 '낮'이다.

<낮의 목욕탕과 술>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목욕탕을 나오면 어김없이 근처 술집으로 향한다. 직장인에게는 그야말로 판타지다.

"그렇다면, 아직 밝을 때 목욕탕에 갔다가 또 아직 밝을 때 술을 마신다면 얼마나 기분 좋고 또 얼마나 맛있을까. 최고 Ⅹ 최고, 그게 바로 낮의 목욕탕과 술이다."(7쪽)

작가는 도쿄에서 보기드문 한적한 곳, 하마다야마에 위치한 '하마탕'에서부터 고서점 거리로 유명한 진보초 '우메노탕'까지 목욕탕 10곳을 소개한다. 술집도 한 단위로 10곳이 등장한다.

단순한 에세이인 듯하지만, 충실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겉모습만으로 판단을 내리지만 목욕탕 손님 하나하나 변태스럽게 뜯어보고, 해석한다.

"몸이 튼실하다. 근육질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살이 잘 붙었는데, 어깨가 넓고 가슴이 두텁다. 어, 수영복을 입은 자리가 하얗게 테두리를 쳤잖아. 수영선수 기타지마 고스케가 입는 것처럼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긴 수영복 타입이다. 수영으로 만든 근육이야, 저건."(84쪽)

유쾌한 문장 사이에는 귀여운 자책도 등장한다. "그러나 내심 희귀할 만큼 산뜻하게 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스스로를 향해 '이래야 어른이지. 역시 멋지다니까!'하고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멋지기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이나 늘어놓으면서 마시지 마."(131쪽)

목욕탕을 좋아하는 이들은 작가의 말처럼 "욕조에 들어가는 걸 싫어한다는 어떤 나라의 사람들 마음"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고단한 일상의 피로를 차분하게 씻어내릴 수 있는 공간이 몇 있을까. 목욕탕을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단돈 몇천 원에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알려달라.

"가능하다면 매일 밤 탕에 들어가고 싶다. 탕 안에서 재충전한다. 다시 태어난다. 재생한다. 새로운 숨을 쉰다. 샤워만 해야 하는 인생은 숨이 턱 막힌다. 부정하다. 썩어가는 것만 같다."(127쪽)

책을 읽고 나면 갑자기 목욕탕이 가고 싶어진다. 서평을 쓰는 이 순간도 그렇다. 맥주 한 잔도 그립다. 급한 김에 책으로 갈음한다.

215쪽, 지식여행,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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