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방해 등 혐의 15명 항소 기각…징역형 집유·벌금형 1심 유지

67명 기소, 징역형 집행유예 14명, 벌금 총액 1억 원.

765㎸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맨몸으로 맞서왔던 밀양 주민이 형사재판에 넘겨져 받은 처벌이다. 재산권, 환경권, 생존권을 위해 싸웠던 몸부림은 국가로부터 철저히 응징받고 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눈앞에 꽂힌 69기 철탑을 매일 보고 살아야 하고, 마을공동체는 무너졌다. 몸과 마음의 상처는 더 깊어졌다. 그래도 끝낼 수 없는 싸움이다.

밀양 주민은 2일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창원지방법원에 모였다. 송전탑 공사를 막았던 '죗값'으로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았던 15명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서다. 이웃 주민도 함께했다.

그러나 창원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성금석 부장판사)는 이들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징역 6월~1년에 집행유예 2년(7명),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2명), 벌금 200만 원(6명) 그대로다.

2일 오전 창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의 항소심 선고 후 법정 밖으로 나온 한옥순(오른쪽) 씨가 항소심 선고 결과를 성토하며 앞으로 활동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재판부는 밀양 주민과 변호인이 송전탑 공사에 따른 육체적·정신적 피해에 저항한 시민 불복종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실정법 질서를 어기면서까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실현돼야 할 법치주의를 배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공사장 인부를 밀치고 욕설, 업무방해, 교통방해, 경찰관 폭행 등은 정당한 수단이 아니다"며 "이에 합당한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법정을 나온 주민은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한탄했다. "오늘 다 (교도소)들어가서 살자.", "무참히 짓밟혔다. 이 할매가 억울해 죽겠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와 법률지원단은 항소심에서 '시민 불복종' 논리를 치밀하게 준비했었다. 신고리 3·4호기 전력을 우회 송전할 수 있다는 점, 전력부족의 허위에 대해 전문가들이 법정에서 증언했었다. 정상규 변호사는 "15명에 대한 사건은 수십 건인데 물리적 충돌 없이 가만히 서 있는 저항 등 비폭력 행위는 시민 불복종이어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계삼 대책위 사무국장은 "주민의 악의적 행위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주민 저항이라는 증명을 했는데 조금도 반영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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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우(75) 주민은 "형량을 줄이는 기대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정신에서 결과를 기대했는데 괘씸할 정도다. 울고 싶다"며 "건강권, 환경권, 생존권 다 뺏겨도 사회정의는 뺏길 수 없다"고 말했다. 한옥순(여·70) 주민은 "우리를 죽이러 오니까 막은 것밖에 없는데 이런 판결은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영자(여·61) 주민도 "TV를 보면 권력을 휘두르며 저지른 큰 범죄자는 뻔뻔하게 잘 먹고 살더라. 터전을 지키려고 한 우리는 범법자가 됐다"며 "이 싸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당하다는 것을 하나하나 밝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이날 판결에 대해 "12년 투쟁, 이미 만신창이가 된 주민에게 다시 한 번 법의 칼날을 휘두르다"라고 논평했다. 그러면서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과정의 위법성을 밝혀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김경수(더불어민주당·김해 을) 의원실과 연세대 국학연구원은 '밀양 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진상조사'를 진행 중이다. 밀양 주민은 당진·군산·청도·횡성 등 송전선로 피해 주민과 연대해 국회에 재산·건강 피해 진상조사를 청원할 계획이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공동체 파괴 조사 보고서가 나오면 한전의 사과와 원상복구,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에너지 정책 전환과 진상규명 활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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