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 시기를 넘기지 않고 3월까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할 경우 4~5월 대선이 치러진다. 이른바 '벚꽃 대선'이다. 국정 공백 장기화를 막으려면 하루빨리 헌재 심판이 완료되고 대선이 치러져야 한다. 그러나 대선 전에 개헌을 끝내려는 정치권 일각의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현재 조기 개헌의 군불을 때는 세력들은 범여권인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이다. 이들은 대선 전 개헌을 완료해 대통령 임기와 차기 정부 구성 등을 새 헌법에 담자고 주장한다. 국회 의석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이 손잡고 조기 개헌을 밀어붙이면 뜻대로 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조기 개헌을 주장하는 이들의 면면이 보여주듯, 개헌은 박 대통령 탄핵으로 재집권 가능성이 작아진 여권이나 애초 집권 가능성이 작은 당의 사활과 맞물려 있다.

특히 범여권은 박 대통령 탄핵의 화살을 모면하려면 이번 대선을 어떻게든 탄핵과 떼어놓아야 한다. 이들이 검찰수사와 특검에서 드러난 박 대통령의 온갖 탈법이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호도하면서 개헌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등 범여권 대선주자나 인사들이 '분권형 개헌'이나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것도, 독자적인 집권 능력이 없는 세력 간 공동정부 구성을 염두에 둔 태도이다. 개헌 논의가 이런 식으로 정치집단의 이해에 부응해서는 곤란하다.

조기 개헌을 추진하는 이들은 두 달 넘게 이어진 촛불집회에서 개헌 목소리가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은 애초 대선과 개헌을 연계하는 정치권 행보가 마뜩하지 않으며, 개헌 논의가 현 시국을 호도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고 있다. 촛불이 만들어준 정국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세력은 국민의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헌법 조항 하나를 바꾸려고 해도 계층, 지역, 세대, 성별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수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꾸는 일은 정치인들 이익에 따라 변질하거나 졸속으로 추진될 수 없다. 개헌 작업은 벚꽃이 지고 난 뒤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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