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뉘우치지 않고 변명만 일삼아
알고 보면 겁쟁이…한국 현실 연상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해석조차 어려운 상황들이 이어집니다. 사람 꼴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어찌 사람 탈을 쓰고 저 모양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이 아닌 악마인 걸까?' '입만 열면 거짓말인데도 참 뻔뻔하게 변명을 늘어놓네.' '참 구차하게 산다. 비겁하게 산다.' 구태여 입으로 뱉지 않지만 모두의 뇌리에 머무는 말들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예전에 만났던 아이들 중에도 이런 비슷한 유형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25년 전쯤 어느 여자중학교에 근무할 때 얘깁니다. 그땐 한 반에 50여 명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생활했습니다.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쯤이었습니다.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결석을 하더니 어느 날 둘이 손잡고 가출을 하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수차례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부모들도 연락이 닿질 않습니다. 한 아이는 덩치가 무척 크고 싸움을 잘하는 아이였고, 다른 아이는 가녀린 외모의 키 작은 아이였습니다. 안타깝지만 학교에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두 아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들어봅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모두 잘 모른다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가출한 학생 둘이 물건을 훔치다 붙잡혀 있으니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일단 데려가라는 전화였습니다. 다른 학교 학생과 싸우고, 돈을 빼앗고, 폭행까지 한 모양입니다. 부모에게도 연락했으니 학교와 가정이 힘 합쳐 아이들을 지도해 달란 부탁까지 합니다.

다음날 아침 학교에 온 아이들은 담임과 상담을 끝낸 후 학생부로 넘겨졌습니다. 학교 바깥에서 범죄를 저지른 학생은 일정한 절차를 거쳐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 때문입니다. 담임 입장에선 어떻게든 뉘우치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내 자식과 마찬가지 심정입니다. "지금부터 잘못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말하면 도와줄 수 있고 선처해 줄 수 있다." 상담 시간 대부분은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온갖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친구들과 담임이 자기들을 따돌렸다며 원망까지 합니다. 끝까지 부인하며 잔머리를 굴립니다. 현실을 외면하고픈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이미 경찰서에서 범죄 사실을 적시한 문서가 넘어온 이후인데 말입니다. "끝까지 버티면 너만 손해인 걸 명심해야 해. 무조건 잡아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아무리 좋게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좀 심하게 다그치면 말문을 닫기도 합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인권을 얘기하며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그땐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훗날 상담 이론을 공부하고 교육 관련 책을 읽어가면서 왜 그때 그 아이는 그랬을까. 퍼즐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나쁜 행동을 일삼은 그 아이들에게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역할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인 듯 보였습니다. 한 아이의 부모는 불의의 사고로, 또 한 아이는 학대와 외면으로 부모가 부재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극도의 피해의식도 나타났습니다. 점심시간에 밥도 같이 먹지 못하고 같은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합니다. 상황에 대한 무지와 비겁함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아이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끝까지 잔머리만 굴리는 모자란 아이였습니다. 알고 보니 겁쟁이였고 '참 나쁜 아이'였습니다. 결국 퇴학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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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 접어든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성장했을까? 어른이 되어서도 중학교 시절처럼 생활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행여나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서 있다면 참으로 큰일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상황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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