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대중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노래 한 곡을 만들려면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멜로디를 만드는 작곡가, 그 멜로디에 가사를 입히는 작사가, 완성된 노래에 생명을 불어넣는 편곡가, 마지막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까지. 이런 네 박자가 잘 어울려야만 '히트'할 수 있는 노래가 탄생한다. 여기 경남에도 '히트 제조기'라 불리는 작곡가가 있다. 바로 김태재(59) 작곡가다. 김 작곡가는 작곡뿐만 아니라 작사, 편곡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지역 가수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창원 팔용동에 있는 녹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주가에서 작곡가로

작업실에 들어서자 녹음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매서운 눈으로 음정을 지적하는 모습에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녹음이 끝나고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테이블로 안내했다.

김 씨는 어떻게 음악을 접하게 됐을까?

"형님 때문이죠. 70년대 초반쯤에 통기타 음악이 유행했습니다. 어느 날 형님이 통기타를 가지고 들어왔어요. 처음엔 관심도 없었는데 한두 번씩 연주하면서 그 매력에 빠졌죠. 이윽고 재미를 붙이면서 미친 듯이 연습했습니다. 독학으로 기타를 익히고 나니 다른 악기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악기는 응용이 가능하거든요. 그때부터 음악이란 세계에 완전히 빠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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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재 작곡가. / 박성훈 기자

이후 김 씨는 악단을 결성했다. 팀원들과 전국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마산을 방문했다.

"록 음악과 헤비메탈을 연주하면서 전국을 누볐죠. 그러다 우연히 마산에 오게 됐습니다. 이상하게 정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36년이 지났습니다.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연주가의 길을 걷던 김태재 작곡가는 결혼을 하게 됐다. 가장이 되자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작곡을 시작한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컸죠. 젊었을 때야 자존심 하나로 음악을 고집했지만 결혼생활은 다르잖아요. 연주라는 게 섭외가 안 들어오면 수입이 하나도 없으니까. '음악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저기서 일도 하고 사업도 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때 작곡을 접하게 됐죠. 내가 만든 곡을 가수들에게 줄 수 있고 사회적 흔적, 그리고 경제성까지 있으니까 해 볼 만하더라고요. 그렇게 연주가에서 작곡가로 전환했습니다."

작곡을 시작하면서 트로트라는 장르에 발을 들였다. 서양음악과 포크송을 주로 연주했던 김 씨였지만 트로트에서도 음악적 감각은 십분 발휘됐다.

"2006년 5월, 제가 작곡한 첫 노래가 나왔습니다. 박진아란 가수가 부른 '별 같은 사랑'인데요. 이 노래로 방송도 하고 지역 문화축제에도 섭외가 되니까 '이 길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역 가수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다

사실 한국 문화예술 분야는 수도권에 집약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곡가가 주목받기란 쉽지 않다.

"실력이 아닌 마케팅이나 기획을 통해서 알려진 작곡가가 유명해지고 '히트 작곡가'로 활동하게 되죠. '급'이 매겨지게 됩니다. 그 한계점이 제일 아쉬운 부분이죠."

작곡가뿐만 아니라 가수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다. 김 씨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해법을 찾아 나섰다.

"녹음실, 편집실, 연주실 등 음악에 관련된 많은 것들이 서울에 모여 있습니다. 질 좋은 녹음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되죠. 경제·시간적 손실이 만만치 않아요. 보통 1박 2일을 일정으로 올라가는데 막상 녹음에 들어가면 처음 접해보는 환경이라 긴장을 해요. 시간과 돈을 버리는 거죠. 이래선 안 되겠다 생각하고 '지역에도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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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재 작곡가. / 박성훈 기자

이윽고 '나비 스튜디오'라는 녹음실을 만들었다. 덕분에 지역 가수들도 우수한 시설에서 음반을 녹음할 수 있게 됐다.

"제가 곡을 준 가수들에게 방송 및 지역축제에서 섭외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주위에서 '작곡가님 노래가 방송에 나오고 있습니다'는 전화를 받거나 거리에서 노래가 들릴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죠."

과거 트로트는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 등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들 덕분에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가요계에도 댄스, 랩이란 장르가 등장하면서 빠르고 비트가 강한 음악이 젊은 세대를 사로잡았다.

"우리네 인생사를 노래하는 게 트로트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 나이가 어때서', '남자라는 이유로', '일소일소 일노일노' 같이 현실을 반영하는 가사와 멜로디를 통해 삶을 위로하는 것이 그 역할이죠. 그런데 트로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20대는 길거리에서 트로트가 나오면 귀를 막고 지나가는 모습도 봤어요. 신유나 박구윤같은 가수들이 젊은 바람을 불어넣고 있지만 20~30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걱정이네요."

곡을 쓰다 보면 작곡가가 선호하는 느낌과 가수나 대중들이 선호하는 느낌이 부딪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이럴 땐 그 접점을 찾기가 까다롭다. 김태재 작곡가는 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작곡가는 질 높은 곡을 쓰고 싶어 하죠. 가수들이나 대중들은 귀에 익고 편한 음악을 추구합니다. 제가 여러 가지 효과와 악기들을 섞어서 곡을 완성해도 '부담스럽다'고 해요. 가사를 바꿔 달라는 경우도 있고요. 그럴 때는 되도록 가수나 대중들의 선호도를 따르죠. 바꿔야 할 것은 바꾸고 꼭 들어가야 하는 부분은 설득해서 접점을 찾습니다."

"작곡가는 '즉시 기록하는 습관' 길러야 해"

이처럼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작곡이나 작사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멜로디나 가사가 갑자기 생각날 때 '즉시 기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저는 항상 녹음기나 필기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머릿속으로 영감이 떠오르면 즉시 기록하죠. 자동차에도 버튼만 누르면 녹음이 바로 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했어요. 또 노래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죠. 작곡가 혼자 좋아서는 절대 안 돼요. 기록과 분석.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작곡가를 꿈꾸는 후배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혹시 작곡가를 꿈꾸는 후배들이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음악에 대한 기본을 익히고 나면 스스로 공부해야 합니다. 특히 대중가요를 작곡하는 사람들은 대중들의 애환이 뭔지, 사회적인 분위기는 어떤지 등도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좋은 가사와 멜로디를 만들 수 있어요."

김 씨는 작곡뿐만 아니라 문화예술봉사단체를 결성해 병원, 요양원 등을 돌아다니며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음악으로 봉사하자'는 취지를 가지고 나비영상풍악단이란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홍실이라는 지역 가수가 단장을 맡고 있죠. 첼로, 색소폰 등 쉽게 볼 수 없는 악기를 연주하니까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더라고요. 최근 창원시장으로부터 표창장도 받았습니다. 작곡과 병행해서 꾸준히 이어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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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재 작곡가 작업실. / 박성훈 기자

김태재 작곡가가 같이 작업하고 싶은 가수는 누구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작곡을 하다 보면 내 노래를 정말 잘 불러줄 수 있는 가수를 원하죠. 두 분이 있는데요. 한 분은 조항조라는 가수입니다. 조항조 씨는 그룹사운드를 했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발성을 구사하죠. 제가 선호하는 음악적 색깔과 목소리가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마지막 한 분은 바로 나훈아 씨입니다. 달리 설명이 필요 없죠.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떻게 하면 노래를 이렇게 맛있게 부를 수 있을까'하는 느낌을 받아요. 언젠가는 같이 작업할 기회가 있겠죠?"

김 씨는 가요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팁을 물었다.

"팁보다는 아마추어 가수들에게 충고를 해주고 싶네요. 지금 '노래방 문화'가 너무 좋아져서 노래 실력이 평준화가 됐습니다. '에코'라는 마이크 효과 때문인데요. 노래 실력을 키우려면 본인 실력을 정확히 인지한 후 문제점을 개선해야 하는데 기계적인 효과 때문에 노래방에서는 단점을 찾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가수가 되고 싶다면 녹음실을 가라고 합니다. 본인이 부르는 노래를 녹음해서 들어보고 타인에게 충고도 들어야 좋은 가수로 성장할 수 있죠. 이건 꼭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대중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목표"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평생 음악과 함께한 김 씨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궁금했다.

"히트 작곡가죠. 많은 대중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될 것이라 믿고 있어요."

인터뷰를 끝낸 김태재 작곡가는 다시 음반 작업을 하러 갔다. 그 열정과 노력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그를 붙잡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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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재 작곡가. / 박성훈 기자

"제가 음악에서 1순위로 생각하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편곡입니다. 저는 언젠가 '편곡 잘하는 작곡가'라는 호칭을 갖는 게 목표에요. 노래를 완성하는 마지막 관문이거든요. 멜로디만 있는 노래를 가지고 드럼, 베이스,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악기를 섞고 잘 조율해서 종합해야 하죠. 이 작업을 서울에서 하려면 최소 3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지역 가수들은 어렵잖아요. 작곡가 혼자서 할 수 있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곡을 만들 수 있죠. 그래서 편곡에 가장 비중을 많이 두는 편입니다. 계속해서 공부는 하고 있는데 끝이 없네요. 죽을 때까지 열심히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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