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를 비정규직 없는 도시로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해 11월 21일 오후 1시 55분. 진주시의회 2차 정례회 본회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본회의장에 입장하던 이창희 진주시장은 류재수 시의원을 지나며 느닷없이 "까불고 있어, 밖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고 말야"라고 말했다. 류재수 시의원은 거세게 항의했고 이창희 진주시장과 설전을 주고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이창희 시장의 막말 논란은 지난해 연말 내내 진주시와 진주시의회의 갈등을 불러왔다. 결국 진주시의회는 12월 22일 진주시 예산 92억 원을 삭감했고, 연초까지 진주시와 진주시 관변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창희 진주시장과 '맞짱'을 뜬 류재수 진주시의원(51)을 만나봤다.

"이창희 진주시장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다"

먼저 작년 11월 21일 생긴 '막말 사태'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2차 정례회는 행정사무감사와 내년 예산안을 다룹니다. 첫날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앉아 있으면 시장님이 본회의장을 돌면서 시의원들과 악수하고 자리에 앉습니다. 저도 일어서서 시장님과 악수하는데 시장님이 반말로 '왜 할 얘기가 있으면 의회에서 하지, 왜 밖에 나가서 떠들고 그래?'라고 하시는 겁니다. 저는 시장님 팔을 잡으며 '무슨 얘깁니까?'라고 했고 시장님은 팔을 확 뿌리치면서 '짜식이 말야 까불고 있어'라고 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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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재수 진주시의원. / 임종금 기자

Q. 도대체 시장이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런 태도를 보인 겁니까?

"11월 19일 진주 촛불집회 마무리 발언으로 사회자가 시의원들과 대표들에게 한마디씩 하라고 시켰습니다. 저는 '진주시정도 국정농단과 다를 바 없다. 갑질이 심하고, 개판 행정 밝혀내고 진주시장 물러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Q. 이 시장이 강민아 시의원에게도 막말을 했다고 하던데.

"본회의장에서 강민아 시의원이 시장님께 항의하니 시장님이 '어이 강 의원, 니는 니 일도 아닌데 왜 니가 나서'라고 하면서 당시 진주시 국장들이 와 있었었는데 강 의원을 뺑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강민아 시의원은 '반말하지 마라. 당신이 시의원 인정 못 하면 나도 시장 인정 못 해'라고 응수했고, 시장님은 한쪽 손을 치켜들고 '확 쌔려 뿔라'고 했습니다."

Q. 원래 이창희 시장이 말이나 행동을 이렇게 하시던 사람입니까?

"아뇨. 첫 임기 때는 전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시정 질문 하기 전에 저에게 '류 의원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했고 당시엔 '고발할 게 있으면 고발하고, 환수할 게 있으면 철저히 환수하라'며 시의원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재선한 이후에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재선 직후 2014년 6월인가 7월일 겁니다. 시장님이 조회를 주재하시는데 당시 제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진주시 간부들에게 거의 훈계하는 말투로, 반말로 지시하시는 것을 보고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점점 더 심해지시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진주 노동 운동 선봉에 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의 프로필부터 정리했다. 류재수 진주시의원은 1966년 진주시 가좌동에서 태어났다. 류 시의원은 할아버지가 한학을 하셨기 때문에 아버지도 한자를 잘 알았고 필체도 좋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순경도 하고 신문기자도 하다가 뒤늦게 목수 일에 뛰어들다가 다리를 다치셨고 50세에 세상을 떴다. 어릴 적 그의 기억에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편지를 써주고 읽어주거나, 장례식이 있으면 만장을 써주는 일이 많이 남았다고 한다.

Q. 제가 듣기로 지역에서 노동운동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시의원도 하시는 걸 보면 어릴 때 리더십이 있거나 그러지 않으셨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키가 작아서 제일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결코 티나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대동기계공고(현 경남자동차 고등학교) 판금과를 나왔고, 방위근무를 하고 1988년에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처음 다닌 공장이 동서산업이라고 타일 만드는 공장입니다. 거기 다니다가 동신제지에서 구인 정보를 듣고 동신제지 1989년 4월에 입사했습니다."

Q. 노동 운동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1989년 6월에 동신제지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땐 한국노총 소속이었습니다. 그해 말쯤에 노조편집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노조 소식지를 만들고 열심히 노조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 7월에 회사 눈 밖에 나서 부당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복직투쟁을 했고 1992년 말에 복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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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수 진주시의원. / 임종금 기자

Q. 가장 활발하게 노동운동을 하신 건 언제인가요?

"2005년에 동신제지 노조위원장을 하면서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민주노총에 들어가면서 파업도 했죠. 1996년에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을 했었는데 동신제지 노조가 진주 지역 총파업을 이끌어가는 노조였습니다. 총파업을 하면서 동신제지 노동자가 25명이나 기소됐습니다. 총파업이 끝난 후 사측에서 제안을 했는데 노동자 전원 기소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저에게 위원장직을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위원장직을 내려놓았습니다. 이후 현장에서 근무했는데, 얼마 안 가서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났습니다. 서울 본사에 있다가 1996년 12월 말에 사직하고 민주노총 진주지회 사무처장으로 왔습니다.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을 할 때 저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김대중 정부 때 사면됐습니다."

Q. 사모님도 노동운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 처는 태일정밀이라고 하는 컴퓨터 조립공장에 일하고 있다가 노조 사무국장을 하면서 지역에 알려졌습니다. 1989년에 처음 만났고 1992년에 결혼했습니다. 아마 진주지역에서 이름이 알려진 노동운동가끼리 결혼한 건 저희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Q. 프로필을 보다 이상한 이력을 봤습니다. 버스회사인 삼성교통 관리부장. 관리부장이라는 게 노동운동가와는 전혀 반대 성격의 직함인데 어떻게 된 건가요?

"1995년에 삼성교통이 부도났습니다. 사장은 구속되고 임금과 퇴직금이 밀려 있었습니다. 사장이 노동자들에게 삼성교통 지분을 모두 넘겨서 노조가 직접 운영하는 회사가 된 겁니다. 그런 와중에 관리부장으로 갔습니다. 처음엔 굉장히 열악했습니다. 정말 일에 푹 파묻혀 지냈습니다. 저희가 2008년에 정영석 시장에게 '무료환승제'를 제안했습니다. 진주시가 이를 받아들였고 무료 환승 충당금 40억 원이 버스회사에게 분배됐습니다. 삼성교통은 15억 원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버스회사도 기사회생하게 됐습니다."

Q. 지금 진주시와 버스회사 간 노선 조정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진주시는 전면 노선 개편을 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문제는 사실상 노선권은 버스회사의 재산입니다. 전면 노선 개편을 하겠다는 건 이 노선권을 사실상 진주시가 갖겠다는 겁니다. 진주시가 시민을 위해서 노선권을 확보하는 거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운송원가를 현재보다 높게 쳐줘야 하는데 현재보다 못하게 제시하는 겁니다. 어느 회사가 그걸 받겠습니까? 안 그래도 진주시 버스 노동자 월급은 창원보다 무려 80만 원이나 적습니다. 다른 비슷한 규모의 도시보다도 더 적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진주시가 노선권을 가져가려면 뭔가 좋은 카드를 제시해야 합니다. 시가 주는 건 없이 돈만 남기려 한다면 무리라는 거죠. 결국 이렇게 가다가 버스 회사 채산성이 악화되고 부도가 나면 누가 피해를 봅니까? 진주시민이 큰 피해를 봅니다. 그렇게 된다면 진주시도 막대한 비용이 들 겁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버스체계를 개편하겠다는 건 난센스입니다."

시장과 싸워도 주민들이 알아준다

Q. 언제 처음 정치에 뛰어드시게 된 겁니까?

"2006년 지방선거였습니다. 사실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한나라당 광풍이 불고 있었고 당시 박근혜 대표가 커터칼 테러를 당해서 분위기가 많이 넘어가 있었습니다. 저는 시의원 선거에서 114표 차이로 낙선했는데 그만하면 선전했다는 평가였습니다. 2010년에 다시 출마해 이번엔 상당한 표차로 당선됐습니다. 모두 민주노동당으로 출마했습니다."

Q. 시의원이 되면서 어떤 결심이셨습니까?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만든 경험이 있으니 이 경험을 살려보자 싶었습니다. 워낙 새누리당이 강하지만 시의회가 집행부와 야합하는 것을 막고 일단 민의를 반영하는 시의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Q. 시의원으로서 가장 뿌듯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진주시 용역 청소노동자들은 딱 보기에도 상당히 열악하셨습니다. 진주시에 물어보니 용역업체에 한 명당 3000만 원씩 인건비를 지급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직접 노동자에게 물어보니 2100만 원 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이상해서 알아보니 10년 넘게 용역비를 주고 한 번도 정산을 안 했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정산을 하자고 했더니 갑자기 용역업체에서 노동자들에게 특별 보너스를 주는 등 돈을 막 준 모양입니다. 노동자들은 처음엔 무슨 영문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전후 상황을 알고 저에게 감사해 하더라고요. 그 뒤로는 매년 정산을 하니 용역업체가 돈을 떼먹고 그러진 않습니다. 그래서 청소노동자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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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희 진주시장 대시민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야5당. / 경남도민일보DB

Q. 얼마 전 국회 청소노동자들도 직영으로 바꿨는데, 진주는 그럴 생각 없는가요?

"사실 직영이 돈이 덜 듭니다. 중간에 용역업체 간부나 사장에게 들어갈 돈이 필요 없으니까요. 여수시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직접 여수 공무원들을 데리고 와서 시장님께 사례 소개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진주시 공무원이 하는 말이 '총액임금제에 걸린다'고 하는 겁니다. 사실 총액임금제는 대단한 규제나 법령도 아니고 얼마든지 시에서 유연성 있게 조정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점이 아쉽죠"

Q. 용역 청소노동자 외에도 시의원님 이름을 검색하니까 진주국제농식품박람회 문제, 악취저감시설 문제 등 여러 이슈가 검색됩니다. 이런 건 어떻게 된 겁니까?

"악취저감시설 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아주 단순한 겁니다. 하수종말처리장에 비닐하우스 씌우듯이 판넬(패널)을 씌워서 냄새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아주 단순한 시설이고 제가 알아보니 50억 원이면 가능한 사업입니다. 그런데 진주시는 93억 9000만 원에 계약했습니다. 제가 의정부, 안산, 시화, 서울 난지물 재생센터 등을 통해서 이 판넬을 씌우는데 평당 40만 원 이하로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진주시는 평당 75만 원을 쳐줬습니다. 주민들 모아서 감사원에 감사 청구할 겁니다. JTBC를 비롯해 여러 언론에 이 문제가 언급됐습니다. 진주국제농식품박람회는 이미 잘못된 것이 확인돼 감사원에서 환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제가 2015년 2월에 정산서를 딱 보자마자 바로 문제점을 알아봤습니다. 박람회에 대형 천막이 있는데 A동은 30m×70m입니다. B동은 15m×40m로 A동보다는 작은데 서류에 보면 A동과 똑같은 크기로 설치하고 같은 단가로 매겨져 있었습니다. 본회의에서 특위를 구성하자고 했는데 부결됐죠. 제가 시민들 서명받아서 국민감사청구를 해서 감사원에 올라갔습니다. 재밌는 게 2014년 박람회 총예산이 42억 원이었습니다. 2015년 총예산이 28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같은 행사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14억 원 이상 남길 수 있었다는 겁니다."

Q. 이 외에도 의원님이 밝혀낸 게 있습니까?

"신진주 역세권 사업도 엄청난 문제입니다. 저는 공모를 통한 특혜 의혹이 있다고 봅니다. 지자체에서 공기업 특별회계를 설치해서 도시개발사업을 하는 건 택지개발로 돈 벌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최고가 공개입찰로 택지를 판매합니다. 그런데 신진주 역세권은 3개 업체가 들어왔는데 사실상 같은 회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회사 대표가 저 회사 이사고 그렇습니다. 또 전자입찰도 안 부치고 판매 입찰을 진주시 업체만 한정했습니다. 결국 조성원가와 비슷한 가격에 진주지역 토호가 부지를 낙찰받았고, 여기에 지금 흥한센트럴웰가가 들어섭니다. 분양도 굉장히 잘 됐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로 인해 수백억 원 이상 이익이 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Q. 참, 진주유등축제 유료화와 가림막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진주시에서는 유등축제 유료화를 통해 22억 원 정도의 수입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저는 그것의 몇 배는 잃었다고 봅니다. 축제날 남강에 가보면 썰렁합니다. 도로공사에 문의해서 2015년과 2014년 통행량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많이 납니다. 2016년도 문의해 놨는데 아마 더할 겁니다. 이미 유료화됐다는 소문이 다 퍼졌기 때문에 2016년엔 더 적게 왔다고 봅니다. 톨게이트에 근무하시는 분들도 '평소와 차이가 없다'고 하실 정도니까요. 유등축제 공간이 제 지역구인 강남동, 만경동 주민들입니다. 불만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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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시 남강유등축제에 설치된 가림막 너머를 보기 위해 무릎을 꿇고 엎드린
할머니와 그 등을 밟고 올라가 남강을 내려다 보는 할머니. /경남도민일보 DB

Q. 의원님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면 진주시나 시장과 다투는 기사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주민들은 좋아하나요? 시나 시장과 직접 부딪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이 많을 텐데.

"좋아합니다. 제가 앞서 말한 것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주민들께 상세히 설명합니다. 제 연봉이 3600만 원인데 4년 하면 1억 4400만 원입니다. 농식품박람회만 하더라도 14억 원 이상 예산을 절약하지 않았습니까? '이만하면 제 밥값은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하면 주민들은 '맞다'면서 좋아하십니다."

진보진영 대통합해서 정권의 한 축 차지해야

그는 오랫동안 진주지역에서 노동운동과 진보정치를 해왔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와 촛불집회, 조기 대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저는 실질적인 진보 대통합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봅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고 난 후를 기대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개혁을 하겠지만 그 사람들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이 큽니다. 솔직히 민주당 자력으로 촛불집회를 이끌어 낸 것이 아니질 않습니까? 진보 대통합이 이뤄지고 새 정부에서 진보세력이 정부의 한 축을 차지해야 우리나라에 내재돼 있는 근본적인 모순을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진보 대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이나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일단 전국조직인 민주노총과 농민회가 주도하고 시민사회세력이 결합하는 전국 단위의 정당이 필요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제가 있는 진주에서 그런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진주는 그간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공동대책위 형태로 연대해 왔습니다. 가능하리라 여겨집니다."

Q. 혹시 정권이 바뀌면 꼭 해봤으면 하는 정책이 있나요?

"요즘 저는 기본소득이나 청년배당제 같은 것에 관심이 큽니다. 우리 진주시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특히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2에서 6:4로 가면 지자체에서 먼저 기본소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돈을 받은 청년들은 이 돈을 모아두지 않습니다. 당장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소비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내수가 살고 경제 선순환 구조가 형성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진주 같은 곳에 대기업 유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설령 유치한다고 해도 고용이나 이런 건 한계가 뚜렷합니다. 실질적인 경제 선순환을 위해서는 기본소득이나 청년배당제 같은 것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회가 되면 이런 걸 제안해 보고 싶습니다."

Q. 이런 정책을 제안하려면 더 큰 지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도의원이나 국회의원이나 말입니다.

"저는 시의원에 만족합니다. 저는 진주에서 뼈를 묻어야 합니다. 다만 진주시의회 의장은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처음엔 시의장도 싫었습니다. 정책 공부할 시간 없이 행사나 불려 다녀야 하니 하라고 해도 안 한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다른 시의원들이 저처럼 열심히 하실 수 있도록 도와주고 보장해 줄 수 있는 자리가 시의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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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수 진주시의원. / 임종금 기자

Q. 진주시를 어떤 도시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까? 딱 하나만 찍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진심으로 비정규직이 전혀 없는 도시로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공공기관부터 하나둘 하다 보면 진주시 규모 정도는 어떻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근 3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가 끝났다. 그는 진정으로 진주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진주시와 이창희 진주시장에게 감정이 쌓였을 법도 하지만 그는 늘 '우리 시, 우리 시장님께서'라고 존칭을 썼다. 지면이 부족해 쓰진 못했지만 진주시매립장 건축 폐기물 매립 문제, 실크산업 문제,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 문제 등 지역 이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나갔다. 그는 처음부터 문제에 대해 크게 접근하기보다는 일반 주민의 눈에서 '이게 왜 이렇지?'하는 의문에서 차근차근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에 더 쉽게 공감됐다. 고로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 동안 진주는 그를 필요로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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