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 교통사고 위험 질주뿐인 삶·영화 닮아

설 연휴 셋째 날 아내와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난 시간은 저녁 6시 20분쯤이다. 어두웠고 비도 조금 내렸다. 집으로 오는 길에 교통사고 위험을 겪었다. 늦지 않은 시간인 데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어서 서두를 까닭이 없었다. 진주시 인사동 부산교통 본사 앞 삼거리에서 신호를 위반하는 차를 받을 뻔했다. 직진 신호를 보고 앞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반대 차선에서 차 한 대가 좌회전하면서 내 앞을 지나간 것이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비가 조금 내리고 있어서 바퀴가 미끄러졌을 텐데도 다행히 사고는 면했다. 0.1초 만에 욕이 튀어나왔고, 짜증과 분노가 치밀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나쁜 운전자를 저주했다. 어디 가다가 혼자 개울에 처박혀 죽으라는 둥, 큰 트럭에 받혀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둥 험악한 말들을 내뱉었다. 기분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혹시 그 차의 번호를 확인할 수 있을까 싶어 블랙박스 저장장치(메모리카드)를 빼왔다. 컴퓨터에 연결하여 당시 파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동영상을 살펴보았으나 가해자가 될 뻔한 그 차 번호는 확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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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다 블랙박스 동영상을 올리며 "개보다 못한 그 운전자에게 한마디를 한다. '부디 조심히 운전하거라. 어지간하면 신호와 차선은 지켜라. 그래도 꼭 사고를 낼 것 같으면 너 혼자 개울에 처박혀 죽어라. 애매한 사람 애매하게 다치거나 죽게 하지 말고. 설이니까 이 정도 해둔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동영상을 되풀이하여 보는 동안 다시 화가 올라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제풀로 지쳐갔다.

텔레비전에서 설 특집 영화 <스플릿>을 보았다. 내기 볼링을 하는 사람들과 통제불능 볼링천재를 둘러싸고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그냥 주인공과 악역을 맡은 주인공은 브레이크 없는 갈등과 대결을 이어나간다. 주인공의 처지에서 보면 행복한 결말인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비극적인 영화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알았다. 제동장치! 브레이크! 이것이 있어야 한다. 한번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숨 쉬고 살아내어야 하는 우리의 삶은 볼링공을 닮았다. 종국에 이르러 몇 개의 핀을 쓰러뜨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중간에 멈추지 못한다는 것은 똑같다. 여행, 독서, 영화감상, 휴식 같은 것으로 쉰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 삶은 잠시도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달려가는 것이다. 질주하는 것이다.

만약 시속 60㎞로 달리던 자동차가 브레이크로 크게 감속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고가 났을까. 나라고 별수 있었겠는가. 자동차에서 가속 장치보다 멈춤 장치를 밟는 페달이 훨씬 더 크다.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멈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설 연휴 셋째 날 저녁 영화 잘 보고 귀가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아슬아슬한 장면은 꿈에도 나타났다. 그 찰나의 순간을 곱씹어 봄으로써 '멈춤'의 중요성을 깨달으라는 계시라고 생각했다. 올 한 해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그 순간을 떠올려보고 방어운전, 조심운전, 안전운전을 하라는 명령이다. 감정은 머리에서 나오고 깨달음은 가슴에서 나오는 것 같다. 감정은 순간적으로 튀어나오고 깨달음은 한참 뒤 뜸이 돌아야 먹는 밥처럼 더디다. 더디지만 제대로 된 밥이다. 밤새 교통사고 위험의 순간과 영화의 장면이 뒤엉긴 꿈을 꾸고 나서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우기 (글 쓰는 삶 생각하는 삶 blog.daum.net/yiwo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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