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여지 없는 삶 질병밖에 없나
관습 속 생긴 가부장 거부 증후군

속도는 스마트한 시대의 대표적인 상징이 된 듯하다. 오늘 출시된 상품이 내일이면 쓰레기가 될 위기에 처할 만큼 유행의 속도는 우리 생활 전반에 스며들었고, 이 속도전에서 뒤처지는 사람은 감각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의심 받는다. 물건의 대체나 교환주기가 점점 빨라지면서 소비가 현대인의 중요한 도덕, 행복의 척도로까지 자리매김했다. 심지어 사회적 기반시설까지 보수·교환주기가 빨라지고 있고 이러한 분위기는 '속전속결'을 국민성으로까지 대체하는 데 성공한 게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속도의 시대라 하더라도 유행이나 속도와는 무관한 것들도 있는 듯하다. 그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들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에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현재의 상태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권력을 자발적으로 내려놓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이나 미풍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어 오는 관습들은 기득권의 창작물일 뿐이라는 미심쩍은 생각을 매년 돌아오는 명절 때마다 확인하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이 다가왔다. 명절이 과거처럼 혈연공동체의 결속을 단단하게 해주거나 배곯던 시절 마른 입을 적셔주는 옹달샘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여전히 여성을 억누르고 있다. 이 병리적 현상은 단순히 명절 때마다 팽창하는 노동의 질량 문제는 아니다. 대가족 사회에서처럼 음식을 많이 하지도 않고 이제는 찾아가거나 찾아올 어른들이 많지도 않은데 무엇이 여성을 억누르는 것일까.

빠르게 변하는 것들 아래에서 면면히 흐르는 지하수처럼 민족적 전통이나 관습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올가미. 오랜 시간 지속하여왔던 허울의 그림자, 여성 자신이 스스로의 검열자가 되어 '미풍양속'을 거부하는 자기 자신과 겪을 수밖에 없는 분열, 그런 분열이 초래하는 내면의 갈등 등…….

이런 '명절증후군'은 명절을 없앤다고 당장 해결될 일은 아니다. 전통이라는 이름의 이면에 자리한 가부장의 지배는 여성의 삶에서 병리적인 형태로 툭툭 터져 나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세계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가부장 거부 증후군'은 우울증이나 히스테리 등 신경증 형태로 여성에게 나타나고, 가부장은 여성의 아픔을 여성만의 열등한 특징으로 규정함으로써 지배자의 자리를 확고히 한다. 그들은 피지배자 스스로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도록 하는 고도의 통치술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의 도리'를 강조하는 의례나 도덕, 전통으로 포장해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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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가부장, 전통과 가부장, 명절과 가부장의 친밀 관계가 지속하는 한 명절증후군은 여성의 삶에서도 친밀한 적이 될 것이 불 보듯 하다. 그 해결책을 우리 사회가 마련해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가부장적 관습이 뿌리깊이 내장된 사회가 일으키는 문제는 개인에게 떠넘겨지는 것이 상례다.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면 여성 자신의 직접적 저항인데 이것은 상처나 극단적으로는 자기파멸을 감당해야만 하는 모순을 안고 있어 여성의 존재 기반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성에게는 어떤 선택이 있을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삶 앞에서 여성들은 우울증이나 신경증 같은 질병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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