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내 삶, 집채 덩어리만큼도 클기라…."

5년 전, 초라한 개량 촌집에 사시던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를 인터뷰했다. 한 여성의 집채만큼 큰 한을 짧은 글로 쓸 때 북받쳤다. 1994년부터 자신의 삶을 증언한 할머니는 "부끄럽지만……"이란 말을 자주 했다. 인물이 좋아 동네 총각들이 좋아했던 처녀, 결혼해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지만 지옥을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오자 손가락질당했다. 그런 김 할머니는 최근 위로금 1억 논란과 관련해 '자신의 기억에 없는', 화해치유재단을 통해 일본이 준 돈을 '내가 받으려 하지 않았으니' "돌려주라"고 했다.

통영 김 할머니는 100세다. 할머니는 '싸우고' 계셨던 것이다. 화해의 진실을 위해 투쟁하고, 오만과 기만에 저항하고, 18세에 멈춘 자신을 보면서 통영 소녀들의 앞날을 위해 가진 것 모두를 주고, 치매를 앓지만 괜찮을 때는 단호히 싸웠던 삶을 '뒤집지 않게 해달라'고 눈물겨운 싸움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돌려주라"란 말을 들은 뒤 할머니가 하는 '투쟁' '저항'이란 연관어가 끊어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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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위안부 피해자 통영 김복득 할머니의 눈물겨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썼다. 분량 때문에 삭제된 기사 마지막 부분은 '김 할머니는 18세에 중국 대련과 대만, 필리핀에서 위안부 삶을 강요당했다. 1994년 위안부 삶을 숨기고 산 지 50년 만에 스스로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며 싸웠다. 평생 가난하게 살며 재산 대부분을 통영 여고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거나 위안부 문제를 위해 썼고, 일본과 국내에서 위안부 삶을 증언하며 할머니는 평생을 눈물로 싸웠다'라고 썼다. '싸웠다.' 나는 이 말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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