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김기춘'의 책무는 진실 고백…충견 되고자 한다면 '비겁한 노인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한복판에 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거제 출신인 그를 두고 이른바 '개천에서 난 용'으로 회자된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명석한 두뇌와 집념으로 기득권층 최상부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학 3학년 때 당시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검사로 공직에 입문했다. 정권이 수차례 바뀌었음에도 낙마하지 않고 검찰 내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를 거듭한 끝에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에 올랐다.

그의 출세가도는 계속됐다. 3선 국회의원에 국회 법사위원장까지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 국회 법사위원장을 모두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공직과 선출직은 자기 자신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얼마나 대단한 '뒷배'가 있으면 40년 이상 공직이나 그 주변에서 영화(榮華)를 누린 것일까. 그 이유와 배경이 궁금하지만 일단 개인의 능력과 노력쯤으로 마무리한다.

김 전 실장을 두고 '왕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부른다. 그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빗댄 말이다. 그의 권력은 사람의 목숨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 수준이었다. 청문회 정국에선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간다는 의미로 '법꾸라지'라는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 검찰총장을 거쳐 법무부장관에 오른 그의 이력만 보더라도 법의 한계와 허점을 꿰뚫고 있을 터이다. 청문회장에 출석해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이 나오면 미리 준비라도 한 듯 "잘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는 말로 자기방어에 급급했다. 당당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걸어온 길에 비추어 '저럴 수가 있나'는 측은함마저 들었다.

그의 뛰어난 재주도 결국 법 앞에서 무너졌다. 일흔아홉의 나이에 수의(囚衣)를 입고 '범털 집합소'로 불리는 서울구치소 2평 남짓 독방에서 겨울을 나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기소 전까지는 손자뻘 수사관과 검사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 불려나가 조사를 받아야 하는 피의자 신분이다.

그는 독방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라와 대통령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팔순이 다 된 나이에 이게 무슨 꼴인가 탄식하며 밤을 지새우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까 궁리를 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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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피의자 김기춘'으로 전락한 그가 국민과 역사 앞에 조금이라도 미안하다면 솔직해져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잘못에 대한 단죄가 1차적 목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역사적 교훈을 남기는 데 있다. 실체적 진실의 열쇠를 쥔 그가 숨김없이 진실을 말하고 죄의 대가를 받는 것이 어른다운 모습이다. 한평생 국가와 국민 덕에 영화를 누린 것에 마지막 보답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할 때다. 끝까지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의 안위를 위해 충견이 되겠다고 한다면 그는 부끄럽고 비겁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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