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에 오른 언론인들' 권력 감시 정상화 고군분투
이명박 정부 언론 장악에 MBC·YTN서 해직자 속출
정권 나팔수·부역자 양성…'박근혜 게이트'예고된 일

"밥줄을 끊는다."

현대 사회에서 한 기업이 노동자 개개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극악한 처분일 것이다. 우리는 쌍용차 파업을 비롯한 다수 기업 노동자들의 해고 사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을 포함) 노동자 개인은 물론이요, 그 가족 구성원들까지 삶이 피폐해져 가는 상황을 봐야만 했다.

MB 정부 들어 사태가 불거졌다. 이른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언론 환경을 만들기 위한 이 '해직언론인' 사태는 정권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그 누구도, 심지어 대기업과 다를 바 없는 YTN, MBC 구성원들까지 해고에 직면하게 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지난 12일 개봉해 17일까지 1만 1442명의 관객을 동원한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이 '해직언론인' 사태의 시작과 현재를 그리는 다큐멘터리다. EBS <지식채널e>로 유명한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가 연출하고,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시네마스케이프 부문과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다큐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된 이 작품은 이 "밥줄이 끊긴" 언론인들이 어떻게 투쟁했고,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한국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담담하게 관찰한 '기록'이기도 하다.

지난 2009년 당시 구본홍 YTN 사장이 최다 득표자를 배제하고 2위를 보도국장으로 임명해 노조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오마이뉴스

◇밥줄 끊긴 어느 해직언론인들의 눈물

한 가장이 출근 시간에 집을 나선다. 출근은 아니다. 아이와 아내의 배웅을 받고 집을 나선 이 언론인이 자가용으로 향한 곳은 법원이다. 해직언론인들은 그렇게 십수 년에서 수십 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쫓겨나 카메라를, 마이크를 잡지 못하고 취재 현장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을 전전해야 했다.

이 장면이 <그들이 없는 언론>의 시작이라면, 그 끝은 여전히 복직하지 못하고 전국 일주 마라톤에 임하는 다른 해직 기자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그들이 없는 언론>은 그 사이 '해직언론인'들의 시간을 채워 나간다. 다수 장면이 방송사 노조나 언론 노조가 과거 촬영한 장면들에 의지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그러한 '기록'의 차원에서 그 의미를 더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실보도' 및 '안광한 사장, 김장겸 보도본부장, 최기화 보도국장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MBC는 어떻게 종편보다 못한 방송사로 전락했나

<그들이 없는 언론>은 이들 기자와 PD들의 밥줄을 끊는 행위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치졸하게 전개됐는지를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다. 왜 방송사 사측은 제 식구인 기자·PD들을 해고하면서까지 정권을 감쌌는지, 그에 맞서 노조원들과 구성원들은 어떻게 저항했는지, 또 그러한 언론 탄압의 결과로 이 한국사회는 어떻게 더 망가졌는지를 냉정히, 냉철하게 조명하는 것이다. 때로 그들과 동료의 굵은 눈물을 담아내고, 때로는 어이없는 사측의 무리수를 '쿨'하게 조소하기도 한다.

그 활약상 중 눈에 띄는 인물은 김재철 전 MBC 사장이다. 법인카드로 일류 호텔에 드나들고 정치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으며, 소위 '쪼잔한' 언행을 워낙 많이 했기에 훨씬 더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캐릭터가 바로 그 김재철 전 사장이었다. 그의 기행은 정권에 부역한 언론사 고위층이 이 사회와 언론환경을 좀먹은 자임을 명확히 드러내 주는 한 챕터라 할 수 있다.

김재철은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종편'보다 못한 방송으로 전락한 MBC는 여전히 암울하다. 그 이면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있다. 박 후보 캠프는 MBC 파업 당시 정상화를 약속했지만, 당선 이후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고, 안광한 사장 체제는 김재철 사장보다 더한 '정권 부역'을 요구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해직언론인 양산 비화

사실 <그들이 없는 언론>의 톤은 꽤 조심스럽다. 선명한 주장을 담거나 해직언론인을 양산하고 언론방송 환경을 망친 주범들에 대한 비판은 간접화법에 멈춰 선다. '구조'보다는 '사람'을 통해 언론환경을 짚어 보자는 의도고, '7년의 기록'이라는 주제와도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직설화법을 동원했어도, 좀 더 방송사 바깥의 환경을 다뤘어도 좋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크게는 방송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마비시킨 이명박 정권의 책략은 더없이 성공했고, 그 수혜를 본 것이 바로 박근혜 정권이었으며, 그러한 언론방송 환경의 악화가 '정윤회 문건' 사건의 축소보도로, '최순실 국정농단'의 미비한 감시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연출의 영역이긴 하지만, <그들이 없는 언론>이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에 좀 더 선 굵은 목소리를 냈어도 좋지 않았을까.

지난 2012년 MBC노조가 당시 김재철 사장의 배임 행위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남도민일보 DB

물론 그 7년의 '기록'은 자신의 직장에 복귀하지 못한 해직언론인들의 현재를 담아낸 걸로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개봉 전후 닥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과 국정농단 사태의 특검 조사, 그리고 블랙리스트 파문과 함께 언론환경의 악화가 국민에게 다시금 환기되고 있으니까.

더욱이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MBC는 기자·PD들의 성명과 1인 시위가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그렇게 <그들이 없는 언론>이 유의미한 작품임을 영화관 밖 현실이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개혁입법을 향한 국민의 열망이 커지는 가운데, 야당은 언론개혁과 관련해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 등을 추진 중이다. 언론 환경의 변화야말로 한국사회의 변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국민은 물론 '해직언론인' 문제를 몰랐던 이들의 인식 변화를 가져다줄 작품이 바로 이 <그들이 없는 언론>이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열린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에서 김진혁 감독(왼쪽부터)과 해직 언론인 최승호(뉴스타파 앵커) 전 MBC PD, 노종면(일파만파), 조승호(일파만파), 현덕수(뉴스타파 기자) 전 YTN 기자가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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