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다르게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 그것은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다. 내가 삶의 가치라고 여기는 것과 기준이 다르고 나와 생각이 다른 것, 또한 삶의 방식이 다른 것도 함께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른다면 반드시 해가 미친다. 내가 한 말이 아무리 옳더라도 다르게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고 서로 처지가 다르다면 같은 일을 두고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서로 다른 논쟁 속에서 합일된 가치를 찾아가는 것은 성숙함을 추구하는 우리가 꼭 해야 할 일 아닌가. 다른 목소리에 서로 등을 돌려버린다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진정한 관대함은 기세 높여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 들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은 것이다.

논어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고 하는 말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는 말이라는 것도 이와 같다. 내가 하는 말을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고 바꾼다면 어떤가. 사람과의 관계는 예나 지금 이렇게 같은데 우리는 논어를 너무 쉽게 눈으로만 읽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수없이 겪어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상대에게 과소평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상대가 내 뜻대로 되길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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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편이고 말을 듣는 데는 자신 있다고 하는 사람도 막상 그런 상황이 오면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더 바쁘고 자기의 생각과 다른 말을 들으면 듣고 있지 못한다. 어떤 것에든 상대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전제되지 않은 마음은 자만이다. 이렇게 맹목적인 자만은 모래성과 같아 자기와 다른 상대의 말에 쉽게 무너지고 만다. 나와 다르게 말하는 상대와 부딪혔을 때, 혹시 내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상대와 부닥칠 때 부러지지 않고 휘어지는 유연함. 결정의 순간에 상대에게 한쪽 문을 살짝 열어주는 너그러운 신사의 모습은 또 얼마나 근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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