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만 살려니 '그네·순실이' 생겨…땀 흘려 일하는 이 대접받는 날 올까

어릴 때부터 착하기로 소문난 인수는 자기가 번 돈 가운데 십분의 일을 달마다 교회에 갖다 바쳤어요. 그걸 십일조라 한대요. 교회 목사님은 틈이 날 때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고, 천국에 가는 첫 번째 지름길이 십일조를 내는 거라고 했대요. 십일조를 잘 내면 복을 받아 천국에 가고, 안 내면 벌을 받아 지옥에 간다면서…. 더구나 십일조를 안 내면 하나님 재산을 떼어먹는 날강도라 했대요.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들으니 하도 겁이 나서 시키는 대로 십일조를 꼬박꼬박 바쳤대요.

인수는 사십 년 넘도록 자동차 공장에 다니면서 잔업과 특근까지 몸이 부서져라 일해 번 돈을 군소리 않고 교회에 바쳤대요. 그런데 말이에요. 지난달에는 공장 사장이 월급을 제때 안 주는 바람에 십일조를 못 냈대요. 어느 날, 교회 주보에 십일조 안 낸 사람 명단에 '김인수'라는 글자를 보고 창피해서 죽을 뻔했대요. 지은 죄도 없는데 괜히 왕따 같고 반동분자처럼 가슴이 두근거려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해요.

어릴 때부터 착하기로 소문난 인수는 마음이 하도 답답하고 어지러워 혼자 산책을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래요. '목사님이 십일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루고루 돌아간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낸 십일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신도들이 바친 십일조가 수십억짜리 교회 건축비와 목사님 생활비와 자녀 유학비에 쓰인다더니 그게 거짓말이 아니란 말인가? 목사님들이 땀 흘려 일할 생각은 않고 신도들을 '십일조 노예'로 만들어 온갖 편리함과 권력을 누리고 있다더니 그 말도 모두 거짓말이 아니란 말인가?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 기사에 목사들이 구린내 나는 정권에 빌붙어 선거운동까지 한다더니….'

그날 아침, 인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대요. 십일조가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고, 십일조를 꼬박꼬박 바친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하게만 느껴졌대요. 인수는 단 하루도 교회 주인이 되지 못하고 십일조 노예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대요. 그날부터 밥을 먹어도 속이 더부룩했대요.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가 시민사회단체에 십일조를 내기로 했대요. 이제는 노예가 아니라 주인 같은 기분이 들고요, 더부룩한 속이 저절로 편안해졌대요.

제가 가끔 가는 교회가 있어요. 간판도 없는 가난하고 작은 교회지요. 그 교회 신도 수는 열 명쯤 되지요. 교회 건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에요. 주일이면 그냥 집에서 예배를 드려요. 목사님네는 남의 집을 빌리고 남의 논밭을 빌려 농사지으며 스스로 가난하게 살아요. 독한 농약과 화학비료와 비닐도 쓰지 않고 온 식구들이 함께 농사지어요. 입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며 정직하게 살아요.

제가 가끔 만나는 스님은 택시 운전기사예요. 스님이 왜 청승맞게 택시 운전을 하느냐고요? 그리 큰 뜻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살다 보니 입만 살아서 부처님을 믿는 건 어느 누구한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깨달음이 와서 택시 운전을 하게 된 거래요. 택시 운전을 한 지 올해 칠 년째지요. 먹고사느라 늘 고달픈 손님들을 태우면서 덤으로 깨달았대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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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으면 밥도 먹지 말고, 글도 쓰지 말고, 말도 하지 마라!" 이게 스님 집 가훈이래요. 깨달음이란 게 그냥 하루아침에 공짜로 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이 가훈이 스님이 깨달음을 얻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스님은 머리만 굴려서 입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늘어나니까 세상이 자꾸 어지러워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그네와 순실이' 같은 사람이 나오는 거래요. 언제쯤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람대접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긴 겨울이 지나고 나면 새봄이 오듯이, 그날은 반드시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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