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9 이후> 족벌을 이기는 연대 (4) 신학림 전 <미디어오늘> 대표

금수저·흙수저 이야기는 듣기 싫은 정도를 넘어 치가 떨릴 정도가 됐다. 유치원생들 입에서도 나온다. 그만큼 개인으로선 극복하기 어려운 계급사회가 돼가고 족벌사회가 돼 간다는 이야기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속 정유라가 이 나라 중·고등학생까지 촛불광장으로 나가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을 이 나라 '지배세력 연구자'로 소개하는 신학림 전 <미디어오늘> 대표는 기득권 세력 내 얽히고설킨 혼맥을 광범위하게 연구하고 있다. 그는 '개천에서 나는 용'은 멸종된 지 오래라고 단언했다. 그에게 이 나라 족벌을 이기는 시민의 연대 방안이 무엇인지 물었다.

- 남해 출신의 <코리아타임스>(한국일보 영어신문 자매지) 기자, 언론노조 위원장, <미디어오늘> 대표 등의 경력과 함께 한국사회 혼맥 연구가로 알려져 있다. 혼맥 연구의 출발점과 그간의 성과를 말씀해달라.

"'혼맥 연구가' 대신 '지배세력 연구자'로 불러달라. 성과를 말할 정도는 아니고 이제 시작이다. 2003년 1월부터 2007년 2월 말까지 4년 넘게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언론이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선다', '언론을 바로 세워 나라를 바로 세우자'는 구호와 목표 아래 치열하게 투쟁했으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원인(遠因)'은 바로 조중동을 비롯한 족벌언론과 사주들이 한국 지배세력의 중심에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스스로 권력의 핵심이 되어 자신들의 사익 추구를 모든 것에 우선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배세력을 연구하지 않으면 정권교체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2007년부터 지배세력의 혼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신학림 전 <미디어오늘> 대표.

- 한국사회 혼맥 분포도를 어떻게 압축할 수 있을까? 국민이 잘 알지 못하는 상징성 있는 대표적 사례를 소개해달라.

"영향력과 지배력이란 관점에서 볼 때 5000만 남한 인구 중에서 대략 1% 정도인 50만 명 정도가 얽히고설켜 국민을 농락하고 나라를 농단하고 있다. 예를 들면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의 '멘토 중의 멘토'로 불리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나 한승수 전 국무총리(현 김앤장합동법률사무소 고문) 등도 한국 지배세력 혼맥의 중심에 있다. 노신영 씨의 둘째 며느리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여동생 홍라영(리움미술관 부관장) 씨다. 홍 회장의 장인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잇달아 지낸 신직수 씨로 유신헌법을 만든 장본인이다. 당시 검사로 파견돼 유신헌법을 작성하는 데 실무적 역할을 한 사람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노신영 씨의 맏며느리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동생 정세영 전 현대자동차 회장의 장녀 정숙영 씨다. 반기문 씨의 또 다른 멘토 한승수 전 국무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4촌 형부로, 육영수 여사의 언니 육인순 씨의 둘째 사위다. 한 전 총리의 손위 동서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40대에 농수산부장관을 지낸 장덕진 씨다. 장덕진 씨의 아들 장원준 씨는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고, 장 기자의 부인은 한수진 SBS 아나운서이다. 한 전 총리의 사위는 부산 토착기업 동일고무벨트의 최대 주주인 김세연 바른정당 국회의원이다. 한 전 총리의 딸은 동양제철화학(현 OCI) 이회림 창업주의 3남 이복영 씨의 며느리이고, 장남인 이수영 씨는 OCI 회장으로 경총(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냈다."

- 한국사회 혼맥이 금수저·흙수저로 상징되는 계급사회, 족벌사회화 현실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나?

"관련성 정도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푸는 열쇳말(keyword)이 혼맥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개천에서 나는 용'은 멸종동물이 된 지 오래다. '새로운 계급사회, 새로운 신분사회의 제도화와 고착화에 들어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뛰고 있거나 뛰어들려는 모든 후보들을 타고난 조건이나 혼맥에 따라 금수저·은수저·흙수저, 혹은 무수저로 분류할 수 있다."

- 서민들은 계층 이동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는 족벌사회를 절감하고 체념하는 과정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직면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족벌과 혼맥도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박정희-최태민에서 그들의 딸로 이어진 폐쇄적 관계 속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한 일종의 돌연변이 혹은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난 결과다. 조중동을 비롯한 족벌언론과 새누리당(바른정당 포함) 등 수구 기득권 지배세력이 박근혜의 실체와 수준을 잘 알면서도 박정희-육영수 피살에 따른 동정론을 불 지펴 집권하고서 온갖 권세를 누리다가,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자 '용도 폐기'하고 '새로운 박근혜'로 내세우려는 사람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라고 본다. 일부 야당 기득권 세력도 반기문을 매개로 수구 기득권 세력에 가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족벌사회 고착화라는 점에서 서민들에게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늪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지, 아니면 1000만 촛불민심으로 집약되는 '족벌을 이기는 연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불교의 '역행보살(逆行菩薩)'처럼 민중들이 촛불혁명을 통해 엄청나게 각성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본다. 이제 우리나라 민중의 역사는 2016년 11월에 시작된 촛불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1960년 마산에서 시작된 4·19혁명이 독재자 이승만을 끌어내렸고,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시작된 부마민중항쟁이 '종신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을 가져왔다. 그리고 1987년 6·10민주혁명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2016년 11월 시작된 촛불혁명은 '한국 사회 자체를 바꿀 것'이라는 게 촛불집회에서 터져 나온 민중들의 외침이자 제 결론이다."

-족벌을 이기는 연대의 계기가 될 수 있게 하려면 서민들은 어떤 목표와 자세를 가져야 할까? 또 언론과 지역사회가 맡을 과제는 무엇일까?

"이제 '정치가 (나와 우리 가족의) 밥을 먹여준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정치에 관심을 두는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언 아닌 유언처럼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있어야 정치를 바르게 하고, 지배세력을 제대로 감시하고 나와 우리의 삶을 지켜낼 수 있다. 지역언론과 지역사회는 지역분권과 제대로 된 지역자치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시민들이 각자 하나 이상의 시민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 한국사회 혼맥 연구를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 그 성과를 어떻게 드러내실 것인지 계획을 말씀해달라.

"지금까지 10년 동안 혼자서 조사하고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고 다듬어 지속적인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재단법인 연구소를 만들 생각이다. 지면에 초대해주셔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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