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임기 마무리 앞둔 이강원 창원지방법원장
강기훈 유서대필 재심청구 등 큰 재판 여럿 거친 후
창원 발령으로 경남 첫 인연 "개방·포용적인 도시"
공익광고·찾아가는 강연 등 통해 '벽 허물기'노력

이강원(56) 창원지방법원장은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 법대를 나와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9년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 서울고법·서울가정법원·서울중앙지법·대구고법 등을 거쳤다. 지난 2015년 2월 창원지법원장을 맡았고, 내달 중순 만 2년 임기를 마치며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된다.

이 법원장은 판사 생활을 하면서 사회적 이목이 쏠린 재판을 여럿 했다. 2009년 서울고법 시절 '외환은행 론스타 헐값 매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해 재판에 넘긴 이가 박영수 현 특별검사다.

2006년 불법 감청 지시 혐의로 기소된 김은성 국정원 2차장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2010년 '재일교포 이종수 씨 간첩사건' 재심에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2012년 조봉암 선생 유족이 제기한 손배 청구소송에서는 "국민 인권 보호를 기본적 책무로 삼아야 할 국가기관이 중대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29억 7000만 원 배상 판결을 했다.

2년 임기 마무리 앞둔 이강원 창원지방법원장./박일호 기자

특히 2008년 '강기훈 유서대필' 재심 청구사건은 빼놓을 수 없다.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씨가 '노태우 정권'에 저항하며 분신자살했다. 전민련 간부였던 강기훈 씨는 유서 대필 등 자살을 사주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최근 국정농단 주역으로 지목되고 있는 김기춘 씨가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 개시 여부를 맡게 됐을 때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오판해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심했다. 나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 이익으로' '열 사람 범인을 놓치더라도 죄 없는 한 사람을 벌하지 마라'는 형사 절차 대원칙에 충실한 결론을 내리려 했다. 즉, 경험칙상 타인 유서를 대필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판단해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후 대법원 결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 결정이 파기되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을 많이 했더랬다. 결국 대법원도 받아들였고, 강 씨는 재심 재판에서 자살방조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돌이켜 봤을 때 법조문만이 아닌 정치적 부분을 고려한 판결을 한 적도 있나?

"기존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법리를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수에게 통용되지 않는 판결이라면 그 결과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 상황만을 고려해 사실과 법리를 벗어난 결론은 내릴 수 없다고 본다. 다만,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희미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느 쪽을 택할지에 대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더 많은 사람이 원하는 쪽으로, 그리고 누가 양보하고 누가 보호되면 더 좋을 것인지에 대한 규범적 판단이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탄핵정국으로 옮아갔다. 이를 비롯해 창원지법과 관련한 도내 현안 등에 대한 견해도 물었다. 이 법원장은 이 대목에서는 말을 아꼈다.

창원지법으로 오면서 처음 경남과 인연을 맺은 이강원 법원장은 창원에 대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느낌의 도시"라고 했다. 주말마다 다닌 경남 곳곳 중 특히 통영 욕지도의 풍경에 반했다고./박일호 기자

-국민 시선이 헌법재판소에 쏠려있다. 어떠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는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 때와 비교하면, 이번 탄핵은 촛불과 언론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본보기 될만한 과거 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에 남을 선례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재가 논리적으로 탄탄히 해서 훗날 귀감이 되는 결정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결정 시기나 내용에 대해 내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경남에서는 '도지사 주민소환 과잉수사' 문제가 주요 이슈다. 시민사회계에서는 '내서 주민 2명을 구속한 것은 검·경 짜 맞추기 수사'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에도 비판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또한 경남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주민소환법 개선 여부에 대한 견해가 있는가?

"나도 그 내용을 살펴봤다.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에 대한 판단은 기록을 검토한 영장전담 판사의 법과 양심에 따른 것으로 존중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청구인 서명부 읍·면·동별 분리 문제에 대해서는 불합리한 부분이 있어 중앙선관위에 개선 의견을 제출했다."

이 법원장은 옛 시절 문학에도 깊이 빠져보고 훗날 철학 교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대학은 법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만 23세 되던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마냥 공부만 한 것도 아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6년간 연애 끝에 결혼했다. 2세를 위해 아내를 상대로 아이큐 테스트를 하는 등 꼼꼼한 '배우자 검증(?)'까지 거쳤다고 한다. 현재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이 법원장은 '등산 마니아'로 유명하다. 창원지방법원장을 맡은 이후 시민·직원들과 함께 주말마다 '낙남정맥' '영남알프스' 종주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전까지는 창원을 비롯한 경남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건가?

"그렇다. 텃세라고 하나? 이곳은 그런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도시 분위기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민 의사가 자유롭고 다양하게 표출되는 특성도 큰 것 같고. 주말에는 경남 곳곳을 다니기도 했는데, 통영 욕지도의 빼어난 풍경에 반했다. 특히 '빼떼기죽'이라는 걸 이곳에서 처음 알았다. 향토 먹을거리로 개발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창원지법원장으로서 지난 2년을 어떻게 보냈는가?

"법과 법원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꿔보려고 노력했다. 생각 외로 법원 일을 잘 모른다든지, 왜곡된 정보를 많이 안고 있다. 시민과의 소통이 필요한 이유였다. 이를 위해 방송 공익광고 '따듯한 법 이야기'를 1년 동안 진행했다. 판사들이 시민들 있는 곳으로 나가 '찾아가는 법교육' '알쏭달쏭 법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사회단체·대학·군부대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제법 했다. '찾아가는 열린 법정'이라고 해서 대학교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실제 재판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법원장은 한때 법을 소재로 한 감동적인 독립영화 제작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실제 독립영화 감독을 만나기까지 했는데, "이러한 내용을 누가 보겠느냐"는 시큰둥한 반응에 힘이 빠졌다고. 그럼에도 언젠가는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법원 퇴임 이후 세워둔 계획이 있나? 나중에 정치에 나설 마음은 없나?

"아직은 별다른 계획은 없다. 정치는 사람 만나는 걸 즐겨야 하는데, 내가 그건 좀 부족한 듯하다. 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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