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분신 비극사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개인 감당 못하는 고통과 내몰림은 계속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나의 죽음이 어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 제도화된 수사로 소신공양을 수식하지 마라. 나는 우주의 원소로 돌아가니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마라."

문득, 47년 전 11월 어느 날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며 온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 열사가 생각났다. 당시 스물두 살의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재봉사였다. 그는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외치며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한 후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자신을 불살랐다. 한국 노동운동사는 전태일의 분신으로부터 시작한다.

굴곡의 우리 현대사는 수많은 피와 분신의 비극사로 점철됐다. 멀리 볼 것도 없이 10년 새에 네 명이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2007년 4월 1일 오후 3시 55분경,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진행되던 서울 하야트호텔 앞에서 허세욱 열사가 분신했다. 그는 택시 노동자였다. 분신 직전 그는 '굴욕 졸속 반민주적 한·미 FTA 협상 중지하라!'고 외쳤다. 그는 분신 보름만인 4월 15일 숨졌고, 그의 이름은 서서히 잊혀갔다.

그로부터 3년 뒤 2010년 5월 31일 군위 지보사의 문수 스님이 이명박 정권의 '4대 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소신공양했다. 스님은 휘발유를 온몸에 부었을 뿐만 아니라 반말 가까이 마신 상태로 분신해 치명상을 각오했대서 세인을 더욱 놀라게 했다. 다비식을 마친 후 스님의 유해는 지보사 주차장 부도에 안치됐다. 애초 계획보다 축소되긴 했으나 MB 정권은 예정대로 4대 강 사업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권 출범 첫해인 2013년 12월 31일 오후 5시경,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 "특검 실시" "박근혜 사퇴"라고 쓴 두 개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그러고는 잠시 뒤 '40대 점원' 이남종 열사가 자신의 몸에 쇠사슬을 묶고는 몸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치명상을 입은 그는 분신 하루만인 갑오년 새해 아침에 결국 숨을 거뒀다. 그가 특검을 요구했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흐지부지되었고, 박근혜는 사퇴는커녕 집권 5년 차를 맞고 있다.

세월은 흘러 박근혜 정권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극도의 위기를 맞았다. 국회의 탄핵 결정에 이어 조만간 있을 헌재의 결정 여부에 따라 박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천만 촛불의 국민적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꿋꿋이(?) 청와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전에 김종필 전 총리가 "5000만이 말려도…" 운운한 말 그대로다.

지난 7일, 전국에서 11차 촛불집회가 열리던 날이었다. 이날 오후 10시 30분께 서울 광화문 앞 시민열린마당 한편에서 또다시 분신사태가 발생했다. 승려 신분으로 평소 시국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정원 스님은 박근혜 사퇴를 요구하며 소신공양을 했다. 스님은 '촛불민심은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역사의 새날을 위해 총력을 쏟으라!'는 글귀를 남겼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3년 6월 11일, 호찌민(구 사이공) 시내 대로변에서 틱광득(釋廣德) 스님이 분신을 했다. 남베트남의 고딘디엠 정권에 항거해서였다. 틱 스님 뒤를 이어 서른 명이 넘는 스님들의 소신공양이 뒤따랐다. 이런 사실이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지자 급기야 미국에서 반전운동으로 타오르기 시작했고, 케네디 정부는 얼마 후 월남 군부를 사주해 쿠데타를 일으켜 고딘디엠을 실각시켜 버렸다. 틱 스님의 소신공양이 고딘디엠 정권을 무너뜨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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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귀중한 것이다. 한 사람을 살리려고 억만금을 쏟기도 한다. 따라서 자신의 몸을 불태워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것은 일반인들로서는 불가해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불가해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극도의 고통으로 내몰릴 때 일어난다. 지금 한국사회는 분신을 권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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