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9일 국회청문회에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사실상 시인했다. 조 장관이 실체를 인정함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범죄임이 드러났다.

흔히 블랙리스트라고 하면 노조 활동으로 해고된 노동자가 다른 업체에 취업할 수 없도록 사측끼리 공유하는 명단을 떠올리지, 정부가 국민 1만여 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국민을 편 갈라 제 편이 아닌 국민은 배제하겠다는 발상이 정상적인 정부에서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 문화예술인들이 대체로 생계가 넉넉지 않다는 것을 약점 삼아 비판의 목소리를 죽이겠다는 발상은 반문화적이요, 반헌법적이다.

박정희 정권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예술인들을 잡아다 고문하여 '빨갱이'로 만듦으로써 예술인들을 길들이려고 했다. 그런 방식이 그 딸이 집권한 시대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예술인에게 지원을 끊는 수법으로 바뀐 것이다. 채찍이 당근으로 바뀌었을 뿐 표현과 사상의 자유에 도전한 헌법 유린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이제 블랙리스트대로 문화예술인 지원이 실제 실행됐는지 여부와 함께 문건 작성의 최종 책임자가 밝혀져야 한다. 우선 떠오르는 인물은 최순실이다. 이 정부에서 문화예술계를 집중적으로 농락한 최순실이 과연 블랙리스트 작성에는 책임이 없는지 의문이다. 이 때문에 최 씨가 2014년 정무수석이던 조 장관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시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도록 움직였을 공산이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검은 문건의 작성 지시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최 씨의 발호를 묵인하거나 심지어 몰랐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책임은 그 자신이 져야 한다.

비단 블랙리스트만이 아니더라도,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를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에 정부의 외압 시비가 있거나, 박 대통령을 풍자한 예술인이 검찰에 기소되는 등 이 정부에서 문화예술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었다. 그 결정판이 이번 블랙리스트의 존재이며 이로써 박근혜 정부는 희대의 독재적 발상으로 예술을 탄압한 정부임이 확인되었다. 특검의 분발을 기대하거니와 박 대통령 탄핵은 더욱 지당한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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