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대학은 졸업을 하려면 여성학을 반드시 이수해야 했다. 남들 다 듣는 교양 강의라 기대라고는 없었다. 그런데 이 강의가 내 삶의 좌표를 바꿀 줄이야.

가장 흥미로웠던 건 부부재산계약제다. 우리나라 민법은 원칙적으로 부부재산계약으로 부부가 혼인 전 재산 관계를 정하도록 한다. 이 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경우 법정재산제에 따른다. 부부는 결혼하기 전에 서로가 가져온 재산을 결혼 후 누가 어떻게 관리하고 이혼할 때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을 사전에 정한다. 민법 828조는 결혼하려는 양측이 이 같은 약정을 하고 법원에 등기까지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법적 효력이 생기기 때문에 결혼 후 이 약정과 달리 재산을 관리, 처분하고자 하는 쪽은 배우자 동의와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난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심지어 이 제도가 원칙이라는 걸 강의를 통해 알았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평등한 부부생활 첫걸음이란 말인가. 교수는 남성 한 명과 이 계약서를 쓰고 과제로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당시 가장 자주 붙어 다니던 '남자 사람'과 이것을 쓰기로 했다. "재산 분할 비율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있지도 않은 재산을 진지하게 나누며 나는 내심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자 사람'의 또 다른 면을 봤다.

우보라.jpg

"돈을 쓸 때 서로 눈치를 보는 거예요. 둘 다 돈을 버는데. 굳이 그렇게 해야 하나 싶은 거죠. 함께 써야 하는 돈은 함께 내고 그 외엔 각자 쓰고 있어요."

며칠 전 신년기획 인터뷰를 할 때였다. 윤소영 경남여성단체연합 사무국장이 남편과 각자 벌어 각자 쓴다는 말을 듣고 부부재산계약제가 떠올랐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