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청춘 예찬](2) 인디뮤지션 장형석 씨
대학 졸업 미룬 채 마이크 잡아 버스킹·경연대회 참가…3월 자신의 이름으로 앨범 출시

새해를 맞아 새 길을 찾는 젊은 문화예술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청춘들이 예술을 기린다'는 뜻으로 기획된 '1020청춘예찬' 두 번째 주인공으로 지난해 음악전문방송채널 엠넷의 <슈퍼스타K>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창원원빈'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등장했던 장형석(29) 씨를 만났습니다.

장 씨는 평소에도, 노래를 부를 때도 늘 밝은 청년이다. 긍정적인 사고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장 씨는 오는 3월 앨범을 낼 예정이다. 이번 앨범에는 발라드 곡 하나와 포크록, 두 곡을 수록한다. 모두 장 씨가 작사와 작곡을 한 곡이다. 그간 창원지역에서 버스킹을 하면서 많은 곡을 불렀지만 모두 커버곡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앨범 준비는 그에게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다.

◇노래 부르는 게 좋았던 한 소년 = 장 씨는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가수들을 보며 꿈도 키웠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야간 자율학습 시간보다 노래방에서 보낸 시간이 많을 정도로 음악에 심취했다. 장소도 가리지 않았다. 학교, 집을 오가며 늘 노래를 부르다보니 보다 못한 어머니가 "그렇게 노래가 좋으면 가요제에 나가보라"고 말해 곧장 밀양아리랑가요제에 출전했다.

인디뮤지션 장형석 씨가 자신의 삶 그리고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2006년 밀양아리랑가요제에 나가서 제가 2등을 했어요. 2등까지 가수회원증을 받으며 가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야 안 사실인데 김필 형이 1등을 차지했더라고요. 형만 없었으면 제가 1등이었는데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이었죠.(웃음)"

김필은 2014년 <슈퍼스타K> 시즌6 준우승 뒤 예능, 콘서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장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창원문성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군 제대 후 학과가 폐과되며 서울종합예술학교에 입학했다. 비싼 학비와 생활비로 인해 서울 생활이 쉽지 않았다.

장 씨는 "부모님에게 의지하기가 죄송해서 호빵과 우유로 하루를 보낼 때도 있었다"면서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다시 노래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마산으로 왔다"며 힘들었던 과거를 전했다.

이후 창신대 부동산금융학과를 다니다 창원대 사회학과로 편입했다. 장 씨는 학교를 다닐수록 다시 꿈을 좇지 않고서는 매일이 무료하다는 걸 깨달았다.

"졸업 1년을 남겨두고 휴학을 하고 다시 기타와 마이크를 잡게 됐습니다. 아직 2년간 더 휴학할 수 있는데 그 기간 원없이 음악을 하고 음악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슈퍼스타K>는 주변 권유로 = 그가 갑자기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버스킹을 하면서 만난 인연이, 주변 권유가 가장 큰 이유라고 전했다.

장 씨는 "버스킹을 하면서 절로 팬들이 생겼다. 그들이 늘 버스킹을 끝낼 시점에는 <슈퍼스타K> 또는 와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생각 없이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장 씨의 <슈퍼스타K> 도전기는 예선 탈락으로 끝났다. 가수 거미와 에일리의 선택을 받았지만 나머지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

장 씨가 지난해 12월 30일 창원에서 공연하던 모습.

장 씨는 예선만큼은 충분히 통과하리라 생각했다.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 부를 때 모두가 즐겼고, 음향감독, PD도 "형석 씨 충분히 합격이야"라는 말을 했기에 더욱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매정하게도 탈락했고, 그 여파로 1주일간 노래를 하지 못했다.

그는 "녹화 전날까지 창원에서 노래하고 뒤늦게 서울로 향했기에 목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콧소리를 많이 내서 부르는데 오히려 그 부분이 심사위원들 반응을 이끌어내서 통과할 줄 알았다"면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탈락의 여파는 컸다"고 전했다.

◇버스킹으로 먹고살 순 없다 = 장 씨는 창원에 버스킹이란 문화가 꽃피기 전부터 홀로 창원 분수광장에서 노래를 했다. 처음 노래를 할 때 아무도 없던 거리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였을 때 희열을 느꼈고, 그들이 박수쳐주고 응원해줄 때마다 행복이 더해진다는 기분을 받았다.

창원 분수광장이나 진해루, 오동동 일대에서 노래를 하며 행복했지만 한편으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다 한 번씩 팁박스에 돈이 두둑해지면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곤 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는 "창원뿐 아니라 어느 지역을 가도 버스킹을 하며 살아가는 지역 예술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젊다는 이유로 먹고살 수 있는 제도적 환경에서 벗어나 있다. 일부 어른이 '음악이 밥 먹여주냐', '나이도 그만큼 찼는데 이러면 안 된다'는 격려나 조언을 하는데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다"면서 "난 노래를 하는 게 직업인데 그 직업을 좋게 보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다. 내가 노래를 하는 이유는 행복하게, 인간답게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 앨범을 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서다.

"앨범이 나오면 주 활동 무대는 창원과 서울이 될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낮에 하는 버스킹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버스킹은 낮에 하면 성공하기 극히 어렵다는 걸 알지만 힘든 일을 하는 게 제게 자극이 될 것 같거든요. 혹시 성공하게 되면 진짜 노래로 먹고살 수도 있을지 모르니 더 열심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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