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인이다]부조리에 맞서다 (2) 페미니스트 윤소영 씨
'집에만 있으라'는 결혼생활 10년 만에 끝내고 공부 시작
"페미니즘,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하자는 다양성 운동이자 인식론이죠"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개인의 관습과 행동을 통일하고 생성하는 원리를 '아비투스(Habitus)'라 했다. 이는 '당연한 것으로 인정된 성향 체계 형태로서 사회 구조가 체화된 것'을 의미한다.

'여자는 다리를 벌리고 앉으면 안 된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 '여자가 너무 많이 배우면 남자가 싫어한다', '남자는 집안의 기둥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체화한 아비투스는 이런 것이다. 개인은 알게, 혹은 모르게 아비투스에 따라 선호를 느끼고 행위를 한다.

페미니스트(Feminist·여성주의자) 윤소영(43) 씨 삶은 아비투스와 싸우는 과정에 있다. 윤 씨는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 맏딸로 태어났다.

"제가 중학생쯤 됐었나 봐요. 어느 집이나 그렇겠지만 어머니는 늘 부엌에 있었어요. 당연히 명절 같은 날은 더하죠. 어느 날 친척들이 집에 왔어요. 그런데 준비해 온 선물을 주고는 당연하다는 듯 다 방에 들어가 있었다는 거예요. 엄마는 부엌에서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고요. 그게 화가 났었던지 제가 친척들이 사온 선물을 집 밖에 내던지고는 다 꺼지라고 했대요. (웃음) 할아버지도 집에 계셨는데 말이에요. 저는 이 일이 기억이 안 나는데 엄만 아직도 기억하세요."

서른이 되던 해부터 여성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는 윤소영 씨. 2014년부터 경남여성단체연합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그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나이에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낮에는 일을, 밤에는 공부를 했다. 힘들었다. 기대고 싶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길 바랐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결혼이었다.

"20살에 결혼을 하고 5년 정도 집안일만 했어요. 매일 밥만 하는 거예요. 엄마가 부엌에만 있는 모습이 그렇게 싫었는데 어느새 제가 있는 곳도 싱크대 앞인 거예요. 매일 아침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오늘 점심은 뭐 할까요? 저녁엔 뭐 드실래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랬어요. 참 웃기죠."

10년이 지나니 죽을 것 같았단다. '그냥' 죽을 것 같았단다.

"이혼할 때는 몰랐는데 한참 지나 조금 알겠더라고요. 제가 왜 이혼을 했는지, 그때 왜 그렇게 죽을 것 같았는지. 결혼 생활이 5년 정도 지났을 때 일을 시작했어요. 생산직을 전전하다 보니 뭔가 배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얘길 했더니 하지 말래요. 전 고작 20대 중반이었는데 그냥 집에만 있으래요."

그는 나이 서른에 '이혼녀'가 됐다. 창원문성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고 진해여성의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소 상담원이 됐다. 여성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건 그즈음부터였다.

"전 좋은 상담자는 아니었어요. 사회적 통념 그대로 생각하는 상담원이었거든요. 친족 간 성폭력 경우 가족이 증인일 때가 많아요. 내담자 가족이 증언을 하다 내담자를 오히려 비난하는 걸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생각하기도 했었죠."

그는 2014년 지금 적을 두고 있는 경남여성단체연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지금 경남 지역 여성 문제에, 나아가 사회 문제에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자는 운동이 아니에요. 남성이 문제라서 이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지향해요. 다양한 관점으로 사회를 보자는 거죠. 예를 들면 주말마다 창원광장에서 촛불집회가 열리잖아요. 여기에서 장애인들은 철저히 소외돼요. 창원광장이 잔디라 휠체어가 진입할 수 없고 점자블록도 없으니까요. 아주 당연하게도 장애인도 이 사회 주인인데 말이에요. 우리가 구조적인 불평등을 그대로 가져와 재생산하는 것이 아닌지 되물어보자는 거죠. 우리가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를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논의해보자는 거예요. 페미니즘은 여성, 남성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인식론이자 방향이고 운동이에요."

그는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교육을 받을 때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 큰 위로가 됐어요. 우리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흔히 하는 그 말이요. 여성으로 살아온 제 삶이 제가 어떤 잘못을 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잖아요. 페미니즘을 알았다면 어린 나이에 단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서 결혼을 선택했을까. 재혼을 했을까. 조금 다르지는 않았을까. 더 주체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았을까. 내 삶의 진짜 주인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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