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2) 남해군
한려해상국립공원 명산 일출·계절 따른 변화 특징 정상부 기암괴석 장관 이뤄
3대 관음보살 성지 보리암 이색적 배경·영험함 눈길 새 나라 건설 설계 돕기도

남해 사람들은 망운산을 남해 제1산으로 꼽는다. 가장 높을(786m) 뿐 아니라 섬의 구심점이자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지 사람 생각은 다르다. 망운산보다는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금산을 더 쳐준다. 망운산이 남해의 진산이라면 금산은 명산이라 하겠다.

◇남해의 보물? = 남해는 보물섬이다. 보물섬이라는 수식어는 여러 측면에서 남해를 잘 설명해주면서 그 가치를 높여준다.

보물섬 발자취는 먼저 '서불과차' 전설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고자 삼신산을 찾아 남해 금산으로 온 서불. 그러나 그는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사냥만 하다 떠나면서 바위에 화상문자(畵像文字)를 새겼다.

금산 부소암 오르는 길에 있는 남해 상주리 석각은 경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전설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남해 금산은 서불이 불로장생 명약을 찾고자 왔던 보물섬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 해석의 억지스러움을 떨치기 어렵다.

그럼 남해는 왜 보물섬일까.

예로부터 남해는 도둑이 없고, 거지가 없고, 문맹이 없는 곳으로 전해진다. 바다를 비롯해 풍족한 자연 덕에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굶어 죽을 염려가 없고, 기온 또한 온화하다.

다시 말해 천혜의 섬 남해는 이곳을 터전으로 삼은 이들에게는 그 자체가 보물인 셈이다.

외지인 처지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가는 곳마다 발길을 잡는 풍경, 아름다운 산세, 가슴이 확 틔는 바다, 입맛을 사로잡는 산해진미, 관광·여행·힐링을 위해 찾는 이들에게 남해는 보물 같은 섬이다. 특히 다양한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가진 금산은 보물 중의 보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또 명성을 얻으면서 남해의 인지도를 높이고 관광수익까지 창출하고 있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해수관음상.

◇황금 비단 두른 산 = 남해 금산(701m·경남도 기념물 제18호)을 명산으로 꼽는 이유는 빼어난 경치 때문이다.

산 자체가 가진 절경뿐 아니라 산이 품은 신비로운 이야기, 장엄한 일출 등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태 또한 매력적이다. 특히 산에서 바라보는 시원한 바다 조망은 몇 번이고 다시 찾게 한다.

남해 금산 정상 망대·봉수대.

이 덕에 금산은 산악공원이지만 유일하게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중생대 퇴적암 지질로 이뤄진 정상부는 온통 기암괴석으로 뒤덮여 있다. 이는 금산 38경이라 불리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망대, 문장암, 대장봉, 이 태조 기단, 삼불암, 사선대, 쌍홍문, 상사바위, 흔들바위 등 모두 독특한 모습과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금산은 소금강 또는 남해 금강이라고도 한다. 본래 신라 원효대사의 기도처로 보광산이라 불렸지만 이성계가 수도 후 왕이 되면서 은혜에 보답하고자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산(錦山)으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산에서 가장 빼어난 풍경은 일출이다.

금산 정상이나 보리암 뒤편 화엄봉이 최적의 조망 장소로 꼽힌다. 멀리 미조 쪽에서 시작된 붉은 점은 차츰 하늘과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이때 고개를 돌리면 온통 황금 비단을 두른 금산을 발견하게 된다.

또 가끔은 동행한 사람의 얼굴에서도 홍조 띤 관세음보살상의 미소를 보게 된다.

◇3대 기도 도량 보리암 = 금산이 유명해진 데는 보리암의 영험함도 한몫했다.

쌍계사 말사인 보리암은 683년(신문왕 3년) 원효가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보광사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가 백두산과 지리산에서 기도를 드리며 산신령에게 자신의 운명을 물었지만 답을 얻지 못하자 금산을 찾아 백일기도를 드린다.

상사암에서 바라본 보리암과 금산 정상부. 온통 기암괴석으로 뒤덮여 있다. 장관을 이룬 바위들을 금산 38경이라 부른다. /유은상 기자

이후 현종은 1660년 조선왕조 개국을 감사하는 뜻에서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보리암으로 바꿨다.

특히 보리암은 전국 3대 기도처의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

이는 원효와 이성계의 스토리텔링이 가장 큰 원인으로 추측된다.

이색적인 자연 배경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병풍 같은 기암괴석을 뒤로하고 아득한 섬과 바다를 마주하고 앉으면 속세를 떠나온 신비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산은 이성계가 왕이 되고자 기도한 곳이라고 하지만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왕에 등극하라는 요청에 대한 결정을 내린 곳, 또는 오랜 고민을 매듭짓고 새 나라 건설을 설계한 곳으로 보는 것이 더 옳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금산은 단순히 '합격', '승진', '건강', '장수', '대박' 등을 기원하기보다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큰 결단이 필요할 때 더 의미 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음이 매우 복잡할 때 찾는 곳 말이다.

금산으로 오르는 길은 △복곡주차장∼복곡탐방지원센터(마을버스)∼정상(도보 15분) △두모주차장∼양아리 석각∼부소암∼정상(2시간가량) △금산탐방지원센터∼쌍홍문∼보리암∼정상(1시간) 코스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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