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신화'에 빠져 새로운 세상과 만남…팬덤 편견 깨고 삶에 활력 긍정성도 인정해야

'팬덤의 긍정적 영향을 쓰시오'.

고3 시절, 친구는 논술에서 '팬덤의 부정적 영향을 예로 두고, 그 반대인 긍정적 영향을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하라'는 문제를 만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고 한다. 친구는 부정적인 영향은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 긍정적인 영향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평소 팬덤 활동을 해보지 않았다면 이 문제를 푸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만하다.

나는 그룹 신화의 팬이다. 힘든 때일수록 더 어딘가에 빠지기 쉽다고 했던가. 진로 고민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던 시기인 고2, 친구가 매일같이 보여주는 영상에 어느 순간 나는 신화에 빠져있었다.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학교에서 찌들고 집에 와 씻고 누워 핸드폰으로 그들의 근황을 보고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수다를 떨 때면 하루의 피로가 싹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공부해서 서울에 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다짐이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꾸준한 의욕이 필요했다. 그 의욕을 채워준 곳이 바로 팬덤이었다. 공부에 별로 의욕이 없었던 나는 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신화 팬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이 팬덤의 이미지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구나'하고. 그도 그럴 것이, 신화를 좋아하는 팬들이 뭉친 팬덤 속에는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전공,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이 곳은 단순히 신화를 찬양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논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만남의 장이었다. 아무 데도 털어놓을 수 없던 고민을 드러낼 수도 있었고, 사람들은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주기도, 냉정하게 충고를 해주기도 했다.

내가 신화에게 고마운 것은 나를 팬덤 속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아이돌이란 일반인들에게는 아주 먼 존재다. 지칠 때, 의지할 데가 없을 때면 '그래 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뭔 상관이야. 어차피 신화는 나를 모를 텐데…'하고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을, 신화창조라는 팬덤은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꾸준히 자극해주었다.

누군가에 깊이 빠지게 되는 것은 그 대상에게 온전히 쏟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점점 커지고 넘쳐흘러 주변의 사람을 챙기게 하고,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도 표출된다. 실제로 팬덤 활동은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면서 사람을 사귀는 법을 배우고, 다양한 직업을 알게 되며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한다. 실제로 얼마 전 광화문 집회에는 다양한 팬덤이 응원봉을 들고 모인 '응원봉연대'가 출현하기도 했다. 또한 학생들은 스타를 더욱 자주 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 내 대학을 들어가거나, 좋아하는 아이돌을 더 좋은 화질로 보고 싶다며 포토숍을 독학하고 그 아이돌의 모습이 들어간 물건 등을 제작하다 자신의 적성을 찾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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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독서를 좋아합니다", "저는 아이돌을 좋아합니다". 이 두 문장은 다름 아닌 나다. 하지만 따로 들었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것을 따로 듣고도 나에 대한 생각이 같을 수 있을까? 나는 사람들이 팬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편견을 가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신화 팬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우리 오빠가 최고야'라는 말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신화 팬이라는 말을 내뱉음으로써 나 자신에게 더 열심히 살아야할 이유를 만들어주고, 또 열심히 사는 이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리며 모두가 당당하게 팬덤 활동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취미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은 취미일 뿐이다. 이상한 시선이 아니라 취미로 인정받는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커밍아웃'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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